(35) 최초로 근대 국가를 시도하다
(36) 이 땅의 주인은 농민이다
(37) 제국을 선포하다
(39) 진정한 동양 평화를 위하여
(40) 3·1 운동, 겨레의 독립 만세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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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10년 전인 1905년 11월18일 새벽 2시, 경운궁 수옥헌(덕수궁 중명전)에는 다섯 명의 대한제국 고위 관료들이 모입니다.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리고 일본특명전권공사 하야시와 외부대신 박제순이 대표로 이토 히로부미가 제시한 조약을 체결합니다. 바로 우리의 외교권이 박탈되는 을사늑약입니다.
러일 전쟁 이후 이토 히로부미의 노림수
이미 11월9일부터 서울에 도착한 이토는 자신들의 침략을 숨긴 ‘동양평화’라는 허울뿐인 명분을 들고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에게 보호국이 될 것을 인정하는 조약 체결을 강요합니다. 외교권을 박탈한 후 한반도를 독점적으로 지배하겠다는 것이지요. 고종과 당시 조정 대신들은 당연히 거부합니다. 그러자 일본공사는 물론 무장한 일본 볍沮?궁궐 안으로 진입시키며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이토는 하세가와 주한일본군 사령관과 함께 고종을 세 번 찾아가 계속해서 압박을 가합니다. 고종 황제는 계속 거부했고 대한제국의 어전회의에서도 수용할 수 없다는 의견이 강했습니다. 결국 이토는 헌병까지 동원해 강제적으로 회의를 열게 하고 회의에 참석한 대신들에게 강제적이고 불법적인 조약 체결에 관한 찬반을 묻게 됩니다. 11월17일, 참정대신 한규설과 탁지부대신 민영기는 강하게 반대했고 법부대신 이하영도 반대합니다. 결국 맨 처음 언급한 다섯 명의 대신들이 찬성의 뜻을 표합니다. 그리고 18일 새벽 일제의 강압에 의한 을사늑약이 체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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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투성이 불법 조약인 을사늑약
일제는 전쟁 중에 집요하게 하나씩 조약을 강요합니다. 먼저 1904년 한·일의정서를 강요하여 한반도의 군사적 요충지를 수시로 사용할 수 있었고,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동의하면서 반대급부로 한반도의 독점적 지배를 승인받습니다. 제2차 영·일동맹에서도, 그리고 러일전쟁의 강화조약인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일본은 국제적으로 한반도의 독점적 지배, 즉 우리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보장받게 됩니다. 그 후 일본 도쿄 외무성을 통해 한국의 외교권을 감리·지휘하며(제1조) 한국 정부는 일본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는 그 어떤 국제적 조약도 맺지 못하도록 하는(제2조) 을사늑약을 체결하도록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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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 특사를 파견한 고종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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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경석 선생님
최경석 선생님은 현재 EBS에서 한국사, 동아시아사 강의를 하고 있다. EBS 진학담당위원도 맡고 있다. 현재 대원고 역사교사로 재직 중이다. ‘청소년을 위한 역사란 무엇인가’ ‘생각이 크는 인문학 6-역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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