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티'10년 선두' 이끈 주역
MBK, 홈플러스 인수·삼성바이오에피스 상장 등 굵직한 딜 잇달아 따내
'IB 사관학교'서 독하게 성장
강정원·황영기 등 배출한 미국 뱅커스트러스트서 단련
[ 정영효 기자 ] ▶마켓인사이트 11월16일 오후 2시15분
투자은행(IB)의 본고장 미국 월가에서 씨티그룹은 골드만삭스 같은 정통 IB에 비해 이름값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6대 IB’로 꼽혔던 살로먼스미스바니와 합병했다고는 하지만 투자은행보다는 시중은행 색채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씨티의 증권 자회사인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은 지난 10여년간 기업 인수합병(M&A) 자문과 캐피털마켓(주식·채권발행 시장) 순위 경쟁에서 최상위권을 놓쳐본 적이 없다. 한국에서 씨티가 본토와 완전히 다른 위상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박장호 한국 대표 겸 투자은행 부문(IBD) 대표와 원준영 전무 등이 포진한 IBD 사단 덕분이라는 점에 경쟁 IB들도 이견을 제기하지 않는다.
베스트 드레서 vs 돌쇠
올해도 한국 M&A 역사상 최대 규모(7조7500억원)로 기록된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인수를 성사시켰고, 각각 세계 바이오 기업 사상 최대 규모와 국내 최대 기업공개(IPO) 기록을 깰 것으로 기대되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미국 나스닥시장 상장 및 호텔롯데의 국내 증시 상장 대표 주관사를 맡는 등 전 부문에서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국내 IB시장의 ‘엄친아’ 씨티를 이끄는 박장호 대표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외국계 금융회사 중역의 전형이다. 키 181㎝, 몸무게 72㎏의 날씬한 몸매에 딱 달라붙는 명품 정장을 받쳐 입은 그가 묵직한 중저음으로 설명하는 M&A 시장의 판세를 듣다 보면 ‘프레젠테이션의 교과서’ 같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IB 초년생 시절 성격이 ‘단순 직설적’이라는 이유로 붙은 ‘돌쇠’란 별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 원래 모습은 외국계 증권사의 세련된 이미지와 거리가 있다. 박 대표 스스로는 본인을 “꽤나 심심한 사람”으로 묘사한다.
별다른 특기도 없고 골프도 즐기지 않는다. 음악 감상이 취미지만 애장 앨범을 물으면 ‘고객과 와인 한잔 하면서 듣는 음악은 전부 좋다’라는 식이다. 직원들이 뽑은 사내 ‘베스트 드레서’지만 입고 있는 명품 정장도 이월상품을 싸게 사서 수선한 것들이다.
IB 스승은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
박 대표는 1989년 미국 워싱턴대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딴 직후 미국계 증권사인 뱅커스트러스트(BT)에 입사하면서 IB업계에 발을 들여놓았 ?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 등 우리나라 금융계를 주름잡았거나 잡고 있는 인물들을 숱하게 배출한 BT는 ‘한국 IB업계의 사관학교’로 불린다. 박 대표도 독하게 컸다. 입사 첫 3년 동안 세 번이나 해고 위기를 겪었다. 박 대표의 보스는 걸핏하면 “자넨 금융과 맞지 않으니 다른 업종을 알아봐”라고 핀잔을 줬다. 박 대표가 서투른 탓도 있었지만 파생상품시장 베테랑이자 지독한 일벌레였던 보스의 눈높이가 워낙 높았다. 그 보스는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이었다. “그분 밑에서 10년을 버틴 게 성장의 자양분이 됐습니다.”
1995년 박 대표는 BT의 IBD 대표가 됐다. 당시 IB시장의 주류인 파생상품시장 최강자였던 BT는 ‘우리가 최고’란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그런 자부심과 직설적인 성격 탓에 이번엔 박 대표가 IB업계를 걷어찰 뻔했다. 1999년 BT가 도이치은행에 합병된 사건이 시발점이었다. 도이치은행이 BT 출신들을 한 단계씩 강등시키며 점령군 행세를 하자 참지 못하고 뛰쳐나갔다. 이때 박 대표를 따라 회사를 함께 나온 인물이 현재 씨티의 캐피털마켓을 총괄하는 원준영 전무(당시 차장)다.
3~4개월 백수생활 끝에 가까스로 민유성 전 산업은행장이 대표로 있던 미국계 증권사인 살로먼스미스바니 IBD의 ‘넘버2’로 취직했다. 하지만 살로먼이 또 다른 외국계 증권사인 슈로더와 합병했고 박 대표는 더 지독한 텃세에 시달려야 했다. 참다못한 박 대표가 지원한 곳이 슈로더가 한국에 새로 만들려고 하는 채권자본시장(DCM) 대표 자리였다.
4평짜리 사무실에서 IB 역사를 쓰다
하지만 슈로더는 본사 사무실(서울 청계천의 현 한국씨티은행 본점)도 내주지 않았다. 겨우 옆 건물(현 예금보험공사 건물)에 보일러실을 개조한 4평짜리 방을 얻었다. 박 대표와 비서, 그리고 직원 한 명이 DCM 부문의 전부였다. 이때도 박 대표를 따라나선 유일한 직원은 원준영 전무였다. BT 시절을 포함해 20여년 가까이 박 대표와 운명을 함께한 원 전무는 현재 김도진 HSBC증권 대표와 함께 ‘한국 캐피털마켓의 대부’로 불린다.
박 대표의 성과는 눈부셨다. 1년 만인 2000년 단숨에 DCM 부문 리그테이블(누적 실적을 종합한 IB업계 성적표) 1위에 올랐다. 4년 연속 1위를 지킨 결과 2003년엔 모든 투자은행가의 꿈이자 ‘IB업계의 별’로 꼽히는 매니징디렉터(MD·전무)로 승진했다. 2005년 씨티증권의 한국 대표 겸 IBD 대표에 취임한 그는 10년째 장수 최고경영자(CEO)의 길을 걷고 있다.
박 대표와 씨티 IBD는 또 한 번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산업구조 재편과 기업 구조조정이 시급한 만큼 향후 M&A와 캐피털마켓이 활기를 띨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박 대표는 “지금은 기업들이 살을 빼고 근육을 키우는 구조개혁을 서둘러야 하는 시기”라며 “알짜 계열사를 최대한 비싸게 팔아서 그 돈으로 생존전략을 짜고 새로운 주력 사업을 육성하는 게 장기적으로 남는 장사”라고 조언했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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