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세보다 준조세 부담이 더 커
오히려 세율 낮춰야 문제 풀린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재단법인 미르’라고 들어봤는지 모르겠다. 지난달 문을 연 문화재단이다. 엔터테인먼트 중심의 한류를 넘어 음식과 의류, 라이프 스타일 등 다양한 분야의 한국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겠다며 정부가 주도해 세운 조직이다. 당연히 정부 재정이 투입됐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삼성 현대자동차 LG SK 등 16개 기업이 486억원을 출연했다. 기업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문화융성정책에 화답한 결과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과연 그럴까. 몇몇 기업에 물었다. 미르에 왜 돈을 냈냐고. 답은 “내라니까 냈다”였다. 누가 내라고 했느냐고 다시 물었다. “다 아시면서”라는 꼬리 없는 답이 돌아왔을 뿐이다.
대한민국을 문화국가로 용솟음치게 하겠다는 원대한 포부가 나쁠 리 없다. 그러나 그건 정부가 할 일이다. 그 비용을 왜 기업들에 떠넘기는가.
청년희망펀드도 그렇다. 대통령이 청년들에게 일자리 기회를 지원할 수 있는 기금을 조성하자며 먼저 돈을 냈다. 기업에 부담이 돌아오지 않을 수 없다. 자동 할당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통 크게 250억원을 내자 현대차가 200억원, LG와 SK가 100억원씩 냈다. 재계가 일사불란하게 낸 돈이 벌써 1200억원이다. 청년 실업을 걱정하는 대통령의 안타까운 마음을 누가 모르겠는가.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창조경제혁신센터도 같은 범주다. 창조경제의 지역 전진기지를 조성해보자는 청와대 참모들의 즉흥적 아이디어에 기업들은 주먹구구식으로 연결된 지역에 거액을 들여 센터를 세웠다. 여당에서조차 대기업 줄 세우기식 강제 할당, 홍보용 행사, 유효기간 2년짜리 정권 치적용이라는 야유가 괜히 나오겠는가.
평창동계올림픽은 또 어떤가. 4대 그룹이 많게는 1000억원, 적게는 500억원을 내기로 조직위원회와 약정을 맺었다. 나머지 기업들만 골치가 아파졌다.
박근혜 정부만 그런 것도 아니다. 손이 크긴 이명박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미소금융은 휴면예금을 모아 시작한 소액대출 사업이다. 이게 만질수록 커지더니 10년간 2조원을 걷기로 했다. 기업 몫이 1조원, 금융회사 몫이 3000억원이다. 지금도 기업마다 많게는 매년 수백억원씩을 내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서 시들해졌지만 말이다.
동반성장기금 역시 이명박 정부 유물이다. 87개 대기업이 7184억원을 내기로 약정을 맺었다. 삼성전자는 1055억원을 완납했지만 다른 회사들은 지금도 납부 중이다.
그뿐이랴. 사고가 터지면 내야 하고, 홍수가 나고 겨울이 와도 내야 한다. 작년에는 세월호 사고로 4대 그룹 400억원을 포함해 재계가 1000억원 넘는 성금을 냈다. 연말 불우이웃 돕기 성금은 삼성이 500억원으로 기준을 잡았고 나머지 기업들은 평소 비율대로 뒤를 이었다. 온누리상품권도 瑩宣?한다. 전통시장에서 쓰는 상품권 말이다. 그것도 장난이 아니다. 4대 그룹이 지난 5년간 사들인 온누리상품권 규모가 6000억원이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준조세 규모는 18조7300억원이다. 내년에는 20조1200억원을 걷을 예정이라고 한다. 올해 예상되는 법인세수가 43조원이니 정부가 공식 인정하는 준조세 규모가 법인세의 50% 수준에 육박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부담금관리기본법에 해당하는 부담금만이 포함될 뿐이다. 해당하지 않는 준조세가 100여종 더 있다는 게 재계의 하소연이다. 5년 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낸 연구 자료에 따르면 한국 기업이 내는 준조세는 법인세의 1.5배 규모다.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다. 제대로 따져 보면 한국 기업의 세 부담이 경쟁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라는 얘기다.
정부 스스로 할 일을 기업의 금고를 털어 처리하고 있다. 얼마나 답답한 노릇인가. 그런데도 세수가 모자란다며 법인세율을 올리자는 주장들이 난무한다.
오히려 부담을 줄여줘야 하는 게 법인세고, 없애야 하는 게 준조세다. 세율을 낮추고 기업 환경을 개선해야 기업들이 투자한다. 그렇게 해서 기업이 돈을 벌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고용이 늘어나고 세수가 증가한다. 평범한 경제 원리다. 정치하는 사람들, 그걸 왜 모르는지.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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