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잔재 없애겠다"
국민학교→초등학교로 바꿔
[ 유승호 기자 ] 문민정부 시대를 연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역사 바로세우기’를 내걸고 군사정권 잔재 청산에 나섰다. 상징적인 사건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수감하고 법정에 세운 것이다. 신군부 세력이 반란을 일으켜 국정을 장악한 1979년 12·12사태에 대해 당시 법조계에선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12·12사태 관련자들을 처벌할 수 있는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지시했다. 검찰은 1995년 12월21일 두 전직 대통령과 관련자들을 구속 기소했다.
쿠데타의 바탕이 된 군내 사조직 ‘하나회’ 청산도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10여일 만인 1993년 3월8일 하나회 출신인 김진영 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 국군기무사령관을 경질했다. 한 달 뒤엔 안병호 수도방위사령관과 김형선 특전사령관을 해임했다.
‘하룻밤에 떨어진 별이 50개’라고 할 정도로 고위 장성들이 줄줄이 경질됐다. 김 전 대통령은 2008년 우석대 초청강연에서 “내가 하나회를 청산하지 않았다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하나회 청산의 의미를 평가했다. 퇴임 후 회고록에서 하나회 척결을 가장 큰 업적으로 꼽기도 했다.
1993년 광복절을 앞두고는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이던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해체하라고 지시했다. 광복 50주년인 1995년 8월15일 중앙 돔 해체를 시작으로 1996년 11월13일 철거 작업을 완료하고 경복궁을 옛 모습대로 복원했다. 역시 일제 잔재라는 지적을 받았던 국민학교라는 명칭도 초등학교로 바꿨다.
대일 외교에서도 강경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95년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 뒤 연 기자회견에서 당시 일본 정치인들의 과거사 관련 망언에 대해 “이번 기회에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했다.
김영삼 정부는 1993년 3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도덕적 우위에 입각한 자구 조치’를 선언했다. 피해자들에 대한 금전적 보상은 일본에 요구하지 않고 한국 정부가 직접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방침은 일본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강화해 같은 해 8월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이끌어낸 배경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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