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날림 심의’가 걱정이다. 더구나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한참을 공전시킨 뒤 뒤늦게 문을 연 각 상임위가 경쟁적으로 예산 증액에 나서 그 규모가 9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른바 ‘쪽지예산’에 ‘인간쪽지’ 논란까지 생기면서 예결위 산하 예산소위에 추가로 요구된 사업이 무려 3000여건이나 쌓인 결과다. 이런 판에 체계적인 예산심의가 이뤄질 것인가. 의원들의 관심은 387조원에 달하는 방대한 정부안에 대한 치열한 감시가 아니라 오로지 지역구 민원 등 총선용 ‘예산따먹기’뿐이다.
매년 어김없이 되풀이되다 보니 국회의 예산증액이 국민 눈에도 낯익은 게 되고 말았다. 예산실 공무원들조차 으레 그러려니 하며 편성 때부터 그런 요구에 대한 별도 호주머니를 찰 정도다. 하지만 국회의 예산증액은 위헌이다. 헌법 57조에는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예산을 나눠먹는 여야의 야합은 행정부에 대한 ‘갑질’을 넘어 헌법정신에도 어긋난다. 이런 위헌적 악습은 실세니, 중진이니, 당직자니 할수록 더욱 심해진다.
증액 요구가 3000여건, 9조원에 달하게 된 것은 내년 4월의 총선 때문이다. SOC 예산이 집중된 국토위에서만 정부 원안보다 2조4524억원이 늘어난 것은 그 방증이다. ‘TK 예산’ ‘박근혜 예산’ 하는 정치공방의 뒤에서 여야 간에, 의원들 간에 치열한 예산흥정이 지금부터 1주일 동안 전광석화처럼 벌어질 것이다. 한국 정치와 국회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렇게 19대 국회는 파장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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