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기환송 비율은 10% 불과
대법 "상고법원 법안 통과돼야"
[ 양병훈 기자 ] A씨는 술집에서 해물떡볶이 한 접시와 맥주 2000㏄를 먹고 3만2000원을 내지 않은 혐의로 약식기소됐다. 무전취식으로 1심에서 벌금 10만원을 선고받은 A씨는 형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고 기각되자 다시 상고했다. 대법원은 재판연구관의 검토와 대법관의 결정을 거쳐 사건을 기각했다.
대법원에 접수되는 상고사건이 올해 처음으로 4만건을 넘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법관 한 명당 연간 3000건이 넘는 사건을 검토하는 셈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23일 “올해 10월까지 대법원에 접수된 상고사건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며 “오는 12월까지 연간 4만2000건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2004년 2만440건으로 2만건을 처음 넘은 상고사건 수는 5년 만인 2009년 3만2361건으로 3만건을 돌파했다. 이후 6년 만인 올해 다시 4만건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4만2000건이 되면 대법관 한 명당 연간 3230.7건, 하루에 8.9건을 검토하는 셈이다.
상고사건이 급격히 늘어나는 건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법적 다툼이 늘어난 데다 항소심(2심)에 불복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고등법원이 내린 민사 항소심 판결의 상고율은 44.7%였고 형사는 38%였다. 지방법원 항소부가 2심을 한 판결의 상고율은 민사가 34.4%, 형사가 33.5%였다. 그러나 대법원에서 사건이 파기환송되는 비율은 민사가 7.6%, 형사가 2.8%에 불과했다.
법조계는 상고사건이 급증한 원인으로 재판 결과에 승복 못 하는 정서, 하급심과 재판 당사자에 대한 불신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시간을 끌기 위해 질 걸 알면서도 고의로 항소와 상고를 거듭한다. B씨는 일반음식점으로 허가받고도 여자 종업원을 고용해 주점 영업을 하다가 적발됐다. 1개월 영업정지 예고 처분에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벌금 50만원에 약식기소됐다. B씨는 영업정지 집행을 늦추려고 정식 재판을 청구했고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갔다.
대법원은 대법관이 처리하는 상고사건을 줄이기 위해 간단한 상고사건을 담당할 별도의 상고법원을 설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2월 상고법원 설치를 위한 법원조직법 등 개정안이 의원입법 형식으로 발의됐다. 법안은 내년 5월 19대 국회 임기가 끝나기 전에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면 자동 폐기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는 24일 상고법원 설치와 관련한 6개 법안을 심사할 계획이다.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상고법원 판결에 다시 상고하면 사실상 4심제로 시간과 비용이 더 들게 된다”며 “대법관 수를 현재의 두 배 수준인 26명으로 증원하면 사건 적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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