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사위원장의 '원칙' 고수에 여당 "여야 합의가 우선" 주장
야당 '합의' 흔들며 일정 안지켜
[ 박종필 기자 ] “(국회에서)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양당) 교섭단체 지도부에 의한 주고받기식의 ‘거래형 정치’가 일상이 돼가고 있다.”
법정 시한을 하루 넘긴 3일 0시48분에 예산안을 처리한 정의화 국회의장은 의사봉을 두드리기 전 “어제오늘 벌어진 일에 대해 한 말씀 드리지 않을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언론이 지켜보는 앞에서 국회수장이 스스로 정치권의 자성을 촉구한 것이다. 지난해 12년 만에 처음으로 법정시한 내에 예산안을 처리했던 국회는 불과 1년 만인 올해 다시 시한을 어기는 구태를 되풀이했다.
당초 2일 본회의에서 예산안을 합의 처리키로 했던 여야는 이날 오전부터 밤 12시까지 누리과정 예산과 막판 쟁점 법안 처리를 놓고 팽팽히 대치했다. 본회의 개의 여부조차 예측할 수 없는 지루한 양당 간 힘겨루기가 하루 종일 계속됐다. 이날 오전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이상민 법제사법위원장은 정부 예산안과 관광진흥법, 대리점 공정화법 등을 처리하기로 한 여야 합의를 무시하고 “법사위에 회부하지도 않은 법안이다. 본회의에 단 한 건의 법안도 상정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이 위원장의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새누리당 지도부는 정 의장에게 “양당 합의가 우선이다. 의장 직권으로 법사위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에 바로 법안을 상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정 의장은 여당의 요구에 “법사위를 거치는 법안 숙려기간을 두자”고 말했다가, 여야 합의가 우선이라는 새누리당의 요구에 떠밀려 오후 7시 본회의 개의를 약속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후 7시가 되자 새정치연합은 본회의에 참석하는 대신 의원총회를 열었다. 4시간 가까이 진행된 의총에선 “양당 원내대표 합의는 졸속”이라는 내부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결국 밤 11시에 본회의가 열렸지만 대체 토론이 장시간 이어지면서 정부 예산안 처리는 법정 시한을 48분 어겼다. 법을 어긴 의원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본회의 직후 “한 시간 늦게 된 건데 뭐.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라고 했다. 새정치연합의 한 의원은 기자에게 “(과거에 비하면) 요즘은 양호한 편 아니냐”고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번 정기국회 기간에 여당은 예산안을 볼모로 원하는 법안을 연계해 처리하려 했고, 야당은 어렵사리 여야 간 합의를 해 온 원내 지도부를 대안 없이 흔들기만 했다.
정 의장은 취임 초 “예측 가능한 국회를 만들겠다”며 국회 개혁 10대 프로젝트를 야심차게 발표했다. 하지만 여야가 스스로 마련한 합의문조차 휴짓조각으로 만드는 상호 불 탔?분위기 속에서 이런 약속은 ‘공약(空約)’이 될 수밖에 없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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