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 금융부 기자) “여신 담당자들에게 절대 대학에 돈을 빌려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인터넷은행과 삼성페이 등 업종간 장벽이 무너지면서 유례없는 도전에 직면한 국내 은행의 전망과 과제를 얘기하던 중 한 은행 최고경영자(CEO)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물론 농담 반 진담 반 성격의 얘기였지만요.
얘기의 시작은 고령화 등 인구 구조 변화였습니다. 최근 통계청의 고용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올 3분기 경제활동 인구(15세 이상 기준) 2716만6000명 가운데 50세 이상이 1011만명으로 집계됐습니다. 50대 이상 장년, 노년층이 30대 이하 청년층을 사상 처음으로 앞질렀습니다. 5000만명을 넘어선 한국 인구는 세계에서 27번째로 많습니다. 하지만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 수준입니다. 24세 이하 인구 수는 전 세계 평균을 크게 밑돌고 있습니다. 인구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실제 초·중·고교에 다니는 연령대 인구(6~21세)는 30년 뒤에는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2020년이면 대학에 입학할 졸업 예정 고교생 수가 현재의 3분의 1이 줄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각 대학은 건물을 새로 짓고, 학과 통폐합 등을 도외시 하는 등 인구 구조 변화를 심각한 문제로 여 璲?있지 않는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습니다.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는 이른바 ‘옐로카드’(경고)를 줄만 하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정말 하고 싶은 얘기는 그 뒤에 이어졌습니다. “인구 구조 변화는 특정 산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조금만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은행 산업에도 큰 위기와 변화를 가져올 변수죠. 어쩌면 ‘핀테크(금융+기술) 열풍’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은행들이 전략을 짜고 상품을 개발하고 사업 방향을 세우는 데 큰 변수로 고려돼야 할 것이 바로 인구 고령화인데, 이런 ‘인구 구조 변화 리스크’를 고민하는 은행들이 별로 없단 설명이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그렇습니다. 개인들은 노후에 어느 정도의 소비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청장년층에 저축을 많이 합니다. 평균적인 저축 성향이 노년기보다 청장년기에 높게 나타나는 것이죠. 고령화가 진행되면 저축률은 하락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다양한 변수가 있겠지만 저축률이 낮아지면 예금 공급이 줄 것이라는 계산도 가능해집니다.
또 일반적으로 고령화는 잠재 노동 투입이라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잠재 성장률을 낮추는 것으로 알려졌죠. 이렇게 저성장이 고착화되면 기업들의 자금 수요는 줄어들 겁니다. 자금 수요가 줄면 대출금리 수준은 떨어질 수 있고요. 이리저리 봐도 은행에 긍정적인 요인을 찾는 게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한국보다 20여년 먼저 고령화 현상을 경험한 일본의 은행들은 대부분 고령자 대상 상품과 서비스 확대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연금 수급자를 대상으로 한 상품과 고령자 중심의 서비스가 보편화돼 있습니 ?
이 CEO는 한국 은행들이 인구 구조 리스크에 덜 민감한 이유로 ‘CEO들의 짧은 임기’를 꼽더라고요. ‘내 임기 때 벌어질 일은 아니니깐, 일단은 후순위로 미뤄서 생각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습니다. 결국 언젠가는 터질 ‘폭탄 돌리기’가 이뤄지고 있다는 그의 말이 예사롭게 들리진 않았습니다. (끝)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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