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유정 기자 ] “기업 경영에 큰 영향을 주는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다면서 기업에는 세부 내용조차 알려주지 않는 게 말이 됩니까.”
7일 점심 식사를 함께한 국내 한 상장사의 임원이 기자에게 한 푸념이다. 스튜어드십코드는 연기금 및 자산운용사를 대상으로 한 의결권 행사 지침. 금융당국이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명분으로 기관투자가의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기 위해 도입을 추진하는 제도다. 가뜩이나 국민연금 등의 의결권 확대로 ‘연금 사회주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기업들로선 경영 판단과 의사결정에 또 하나의 큰 변수가 등장하는 것이다.
기업들의 불만은 금융위원회의 불투명한 논의 절차에서 비롯됐다. 금융위는 코드 도입에 가장 큰 이해관계가 있는 기업들을 태스크포스(TF)에 참여시키지 않았다. TF는 금융위와 금융투자협회,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자본시장연구원 등으로 구성됐다. 학계(김우찬 고려대 교수), 운용업계(권준 피델리티자산운용 대표·조철희 유진자산운용 대표), 생보업계(김도수 교보생명보험 투자사업본부장) 등이 참석한 지난 2일 첫 공청회에도 기업들은 초대받지 못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TF로부터 공청회를 전후로 경제계의 의견을 내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며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다” 고 말했다.
2010년 처음으로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 영국은 1년 이상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쳤다. 경제계에서 어떤 의견을 냈는지, 그 의견의 최종 채택 여부와 탈락 사유까지 정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도입한 일본 역시 경제계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 일본식 경영에 최적화한 제도를 안착시켰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금융위는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이 한국 자본시장 선진화와 직결되는 과제임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벌써부터 상장사들의 불만이 폭주하는 상황이다. 무슨 이유로 기업들만 TF에서 배제한 것인지 의아스럽기만 하다. 경영 투명성 문제만 해도 그렇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공시규제와 경영자 연봉공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새로운 규제를 얹겠다면 경제계와의 간담회부터 먼저 하는 것이 순서다.
이유정 증권부 기자 y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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