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병훈 법조팀 기자 hun@hankyung.com
[ 양병훈 기자 ] “변호사님 사건 필요하지 않습니까? 제가 수수료 받고 가져다드립니다. 수수료율은 업계 표준 30%에서 조절해드리고요.”
최근 만난 한 변호사는 엉겁결에 법조브로커를 만나 ‘동업’을 제안받았던 일을 털어놨다.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얘기 좀 하자”며 불쑥 들어오더니 이런 ‘은밀한 제안’을 꺼냈다는 것이다. 변호사가 아닌 사람이 수수료를 받고 의뢰인과 변호사를 연결해주는 것은 변호사법 위반으로 형사처벌 대상이다.
이 변호사는 “불법 브로커의 영향으로 회생·파산사건은 20만~30만원이면 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졌는데 이 가격이면 정상적으로 일하는 변호사는 사건을 맡을 수 없다”며 “결과적으로 법률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는 등 정상적인 시장이 망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변호사업계가 최근 급격히 어려워지면서 법조브로커가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2008년부터 2013년 6월까지 검찰에 적발된 법조브로커는 모두 2239명이다. 이 기간 월 33.9명이 처벌을 받은 셈이다. 그런데 올해 상반기에는 294명의 법조브로커가 적발됐 ? 월 49명꼴 적발로 이전보다 50% 정도 늘었다. 지난달에는 법조브로커 및 이들과 거래한 변호사 등 149명이 검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서초동의 한 개인 개업 변호사는 “사건이 없어 사무실 임대료 걱정이 들 때면 수수료를 떼주더라도 법조브로커에게 손을 벌리고 싶어진다”고 털어놨다.
법조브로커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형사처벌이 약해서가 아니다. 법조브로커 시장은 ‘수요자가 원하는 걸 정상적으로 공급받을 수 없을 때’ 찾게 되는 일종의 암시장이다. 의뢰인은 어떤 변호사가 자기 사건을 잘 처리할지 알고 싶은데 변호사법은 그런 정보 거래를 할 수 없도록 원천적으로 막아놓고 있다. 한국은 그 어디서도 변호사의 전문 분야나 승소율 등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찾아볼 수 없다. 결국 다급한 의뢰인은 변호사를 잘 연결해준다고 알려진 브로커를 찾게 된다. 수요를 없앨 수 없고 공급자가 응하는 한 법이 아무리 금지해도 암시장을 없앨 수 없다.
암시장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거래를 양성화하는 것이다. 마약처럼 폐해가 큰 물건이 아니라면 양성화했을 때 서비스·재화의 질이 좋아지고 가격이 떨어져 소비자에게 이익이 돌아간다. 변호사 유상 중개제도는 이미 많은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다. 법무부가 지난 10월 대법원, 대한변호사협회 등과 함께 꾸린 ‘법조브로커 근절 태스크포스(TF)’가 이달 중 마지막 회의를 열고 구체적인 법조브로커 근절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한다. 변호사 중개제도 도입 방안이 대안으로 나오기를 기대한다.
양병훈 법조팀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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