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수치로 살펴보자. 1~11월 수출액은 4846억달러에 달했다. 12월 수출분까지 합하면 5000억달러를 달성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중국과 미국 시장에서 선전했다. 중국 시장 점유율(1~8월 집계치)이 작년 9.7%에서 10.5%로 늘었다. 미국 시장 점유율도 작년 3.0%에서 3.3%로 증가했다. 무역수지 흑자 규모도 832억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우리 경제는 이렇게 수치상으로 보면 문제가 전혀 없는 듯이 보인다. 속사정은 사뭇 다르다. 사실 1~11월 수출은 타격을 입었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7.6%나 줄어든 수치다. 수입도 작년보다 16.6% 감소한 4014억달러에 그쳤다. 원자재와 기계류 등의 수입이 크게 위축됐다는 것은 내년 경제전망을 어둡게 한다.
한국은 기술과 가격 경쟁력 면에서도 쫓기는 중이다. 중국은 이제 가격뿐 아니라 기술면에서도 한국을 밀어내고 있다. 국내 주요 업종별 단체 및 협회 30곳을 대상으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조사한 ‘한·중·일 경쟁력 설문조사’가 증거다. 중국과 기술 경쟁에서 이미 추월당했거나 3년 이내에 근접할 것이라고 응답한 곳이 79.2%(19곳)에 달했다. 중국과의 가격 격차에 대해선 ‘절대적 열위’ 33%, ‘비교적 열위’ 54.2% 였다.
일본과의 가격경쟁력이 비슷하거나 열세에 있다고 한 응답도 70%(14곳)나 됐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에 낀 ‘샌드위치’가 아니라 양면(가격과 기술)에서 모두 얻어맞는 ‘샌드백 신세’라는 지적이 새롭게 나왔다.
업종별로 보면 더 확연하다. 우리의 주력 산업인 조선(造船)은 가격과 기술면에서 이미 중국에 붙잡혔다. 신규 조선 물량은 줄줄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중이다. 철강, 반도체, 자동차, 기계 등 주력산업도 결코 안심할 수 없는 단계다. 엔저(低)로 인해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자동차가 일본에 밀리는 상태다.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지만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 산업구조조정과 규제개혁은 지지부진하다. 경제민주화와 반기업 정서도 팽배한 상태다.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국가별 부채규모가 1920년대 대공황 때처럼 크게 증가한 상태”라며 “미국을 비롯해 거품경제가 빠지게 되면 우리 경제가 더 큰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4~5면에서 바짝 따라온 중국과 위기의 한국을 짚어보자.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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