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기술 배우러 오는 사우디 기술자들…30년 전 우리 모습 같아"

입력 2015-12-13 19:56  

원전 강국으로 도약하는 한국

1980년대 국내 연구진 37명, 미국 현지업체서 기술 체득
한국형 원전 개발 초석 닦아

내년 2월 사우디 엔지니어 34명, 스마트원전 기술 배우러 방한
과학자들 "격세지감 느낄 정도"



[ 박근태 기자 ]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수출할 중소형 발전용 원자로인 스마트(SMART)의 상세 설계에 들어갔다. 지난 3월 사우디아라비아와 원자로 수출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은 뒤 사우디아라비아 현지에 맞게 원전 설계를 변경하는 작업에 돌입한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엔지니어들은 내년 2월 한국의 원전 설계를 배우러 한국을 찾는다. 김긍구 한국원자력연구원 스마트개발사업단장은 “1980년대 한국의 과학기술자들이 원전 기술을 배우러 미국으로 건너간 것처럼 사우디 기술자들이 우리 기술을 배우러 온다”며 “첫 원전 도입 38년 만에 한국 원전 기술을 해외에 전수하는 시대가 열렸다”고 말했다.

30년 전 원전 배우러 건너간 37명

한국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에 한국형 원전을 수출한 데 이어 올초 사우디에 우리 손으로 개발한 스마트 원전 수출길을 열었다. 미국과 캐나다 등 해외에서 원전 기술을 가져다 써야 했던 30여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라고 과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정부는 1984년 고(故) 서경수 박사 등이 중수로 핵연료 국산화에 성공하자 곧바로 원자로 기술 자립화에 들어갔다. 고리 3·4호기 때부터 원자로, 증기발생기, 터빈과 발전기, 토목공사 등을 나눠 발주하고 국내 업체들이 참여하게 하는 방식으로 하나하나 기술을 익혔지만, 자립화 성공을 전망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1986년 12월 연구자 32명과 행정원 5명으로 구성된 37명의 첫 연구진이 원전 설계사인 미국 컴버스천엔지니어링(CE)으로 떠났다. 영광 3·4호기의 공동 설계를 전제로 사업을 수주한 CE는 처음엔 한국이 기술을 배워가도 자립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어깨너머로 어느 정도 기술을 체득한 연구진은 곧 설계를 주도했다. 이렇게 육성된 인원 200여명이 울진 3·4호기에 처음 들어간 1000㎿급 한국형 표준원전(OPR1000)을 완성했다.

당시 한필순 원자력연구소장과 함께 한국형 원전 개발사업을 맡은 이병령 박사는 “CE와 공동 설계를 통해 미국 등 선진국의 기술과 도면을 새롭게 응용하고 적용하는 노하우를 알게 됐다”며 “한국형 원전 개발로 이어지는 기초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원전 배우러 오는 34명

사우디에 수출한 스마트 원전은 한국형 표준원전(OPR1000)과 UAE에 수출한 신형 경수로(APR1400)보다 규모가 작은 중소형 원전이다. 발전 용량이 기존 대형 원전의 10분의 1 규모다. 대형 원전을 지을 자금이 부족하거나 전력 수요가 많지 않은 국가를 전략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수출 상품이다. 하지만 한 번도 건설된 사례가 없어 정작 개발을 해놓고도 수출길을 찾지 못했다. 이때 관심을 보인 나라가 사우디다. 사우디 정부는 스마트 원전의 건설 부지 제공과 인력 양성을 주요 조건으로 내세웠다.

내년 3월부터 한국에서 원전 기술을 배울 엔지니어는 사우디왕립원자력신재생에너지원이 뽑은 현지 대학 출신과 해외 유학파 출신 기술자 34명으로 구성된다. 기술자들은 앞으로 3년간 국내에 머물며 현지에 건설할 스마트 원전 1·2호기 원전 설계에 필요한 기초 지식과 설계 실습 교육을 받는다. 사우디 정부는 스마트 원전 공동설계를 통해 원자로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사우디 정부가 지난 3월 양해각서를 체결할 당시부터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내세운 이유다. 일각에선 어렵게 확보한 원전 기술을 쉽게 해외에 이전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김 단장은 “한국과 사우디는 인력 수나 질에서도 크게 차이나고 사업 모델도 다르다”며 “국내에서 양성된 사우디 인력은 향후 스마트 원전의 제3국 수출에서도 한국과 함께 활동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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