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 돈 풀던 버냉키, 다시 조이는 옐런…Fed 의장 한마디에 세계 경제 '롤러코스터'

입력 2015-12-20 18:38  

역대 Fed 의장의 통화정책은

7대 의장 에클스, 1929년 대공황 후
성급한 출구전략 단행…시장 위축

'최장수' 마틴, Fed 독립성 확보
'고금리 정책' 볼커, 긴축 비판
'양적완화' 버냉키, 금융거품 심화



[ 박수진 기자 ]
미국 중앙은행(Fed)이 지난 16일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세계 금융시장과 원자재 시장은 말 그대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2006년 6월 이후 9년6개월 만에 0.25%포인트 금리인상으로 세계 경제가 출렁인 것이다. 심지어 금리 인상 결정 뒤 재닛 옐런 Fed 의장의 기자회견에서는 그가 ‘경기부양적(accommodative)’ ‘점진적(gradual)’ 등의 단어를 몇 번이나 사용했는지를 놓고 외신들의 분석이 잇따랐다. 세계 경제 대통령이라는 Fed 의장의 위상과 영향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앞으로도 Fed가 어떤 조건과 속도로 금리를 인상할지 세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내년에도 세계 경제에 가장 큰 변수는 단연 미국 금리인상”이라고 진단했다. 글로벌 금융시스템이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Fed의 ?村各?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Fed의 교훈…‘에클스의 실수’

지난해 2월 취임한 옐런의 과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후 이를 진화하기 위해 취한 다양한 통화정책을 제자리로 복귀시키는 일이었다.

시장의 동요를 최소화하고 경제 회복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면서 제로금리를 정상 수준으로 올리고, 풀어놓은 4조5000억달러 규모의 유동성을 흡수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기 때문이다.

1913년 Fed가 설립된 이래 의장직을 거친 전임 14명 중 1~6대 의장은 재무부 고위관료(출신)였다. 전임 의장들이 처한 상황은 각기 달랐다.

Fed 전문가인 차현진 한국은행 인재개발원장은 “옐런 의장이 현재 상황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는 7대 매리너 에클스 의장”이라고 말했다. 7년간의 제로금리와 양적 완화(QE)로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는 현재의 미국 상황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에클스가 취임한 1936년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1929년 대공황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1933년부터 시행한 대대적인 사회간접자본 투자정책(뉴딜정책)과 통화확장정책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던 시기였다. 1933년 25%까지 치솟았던 실업률이 1937년 초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뉴욕 다우지수는 1932년 7월 저점을 찍은 뒤 371% 치고 올라갔다.

당시 에클스는 이런 상황을 과열 조짐으로 판단했다. 그는 1937년 지급준비율을 세 차례에 걸쳐 50%나 올렸다. 주식시장은 그 한 해 40% 폭락했고, 실물경제 위축으로 이어졌다. 화들짝 놀란 Fed는 이듬해 지준율을 낮췄고 정부도 재정을 투입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세계 통화정책 담당자들은 이 같은 성급한 출구전략을 ‘에클스의 실수(Eccles’s failure)’라고 부르며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가 최근 “옐런의 이번 금리인상이 너무 성급한 조치로 밝혀지면 에클스가 금리인상 후 곧바로 제로금리로 돌아간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던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였다.

굵직한 족적 남긴 역대 의장

11대 Fed 의장인 윌리엄 밀러는 ‘최악의 의장’으로 꼽힌다. 그는 오일쇼크로 물가가 급등하자 17개월 재임기간 무려 7차례나 금리인상과 인하를 번복하는 혼선을 빚었다. 옐런 직전 의장인 12대 폴 볼커, 13대 앨런 그린스펀, 14대 벤 버냉키 등은 102년 Fed 역사상 가장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볼커는 1970년대 미국의 병이었던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을 고금리로 다스린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유명하다. 그의 혹독한 고금리 정책은 지나친 긴축이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정부 시절 호황의 기반이 됐다.

그린스펀은 재임 기간 1987년 주식시장 폭락(검은 월요일·Black Monday), 2000년대 초반 ‘닷컴거품 붕괴’ 등 두 차례의 위기를 맞았다. 그는 그때마다 금리인하와 규제완화 카드로 위기를 돌파하며 미국 경제를 고성장·저물가의 ‘골디락스’경제로 이끌었다.

그의 후임 버냉키는 취임 직후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세 차례에 걸친 양적 완화와 제로금리 정책을 펼치며 위기를 헤쳐나갔다.

그린스펀과 버냉키는 각기 뚜렷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금융위기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지적(그린스펀)과 금융거품을 일으켜 소득불평등만 심화했다는 비판(버냉키)를 받고 있다.

“옐런 참고할 사례 없어 부담”

9대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의장은 뚜렷한 원칙과 소신으로 역대 최고, 최장수 Fed 의장(브루킹스연구소 선정)으로 꼽힌다. 그는 1951년부터 1970년까지 19년간 전후 미 경제를 이끌며 Fed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안정적 통화정책으로 인플레이션 없는 경제성장을 구현했다. 그는 “Fed의 임무는 파티가 한창 달아오를 때 그릇을 치우는 일”이라는 말로 Fed의 역할을 정의했다.

Fed 연구원 출신인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옐런을 포함한 역대 Fed 의장 15명 중 독립성과 전문성, 업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인물은 5명 정도에 불과하다”며 “그중 옐런 의장이 참고할 사례가 없어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큰 부담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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