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M&A 막전막후] 하룻밤새 뒤바뀐 홈플러스 승자

입력 2015-12-21 09:37  

어피너티 우선협상자 선정 통보 받은날 밤 MBK 최종 승부수
서명하러온 협상장 엘리베이터에서 서명 마친 MBK와 마주쳐



이 기사는 12월14일(05:20)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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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2일 오전, 홍콩의 날씨는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축 처지게 했다. 오전 9시에 기온은 이미 28도까지 올라갔고 비까지 주룩주룩 내려 후텁지근했다. 하지만 홈플러스 인수전의 최종 협상장이 마련된 홍콩 시내 모 호텔로 들어서는 이철주 이상훈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AEP) 대표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죄송합니다. 방금 MBK와 사인했습니다"
국내 2위 대형마트인 홈플러스를 놓고 칼라일 MBK파트너스 등 기라성 같은 사모주식펀드(PEF)들과 1년 가까이 벌여온 혈투의 종지부를 찍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전날 홈플러스의 대주주인 테스코와 매각주관사인 HSBC증권으로부터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으니 내일 오전 사인하러 오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의 환호가 아직 가시지 않은 참이었다.

협상장으로 올라가 서명만 하면 어피너티는 ‘한국 인수·합병(M&A) 역사상 최대 규모의 거래’를 성사시킨 PEF로 길이 남을 것이었다. 지난해 초 오비맥주를 되팔아 4조원의 차익을 남긴 지 1년반 만에 또다시 한국 M&A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게 됐다는 기대에 부풀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발걸음을 옮기려는 두 대표의 표정이 일순간 굳어졌다. 내려오는 엘리베이터에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과 김광일 대표가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홈플러스를 놓고 마지막까지 경쟁을 벌였던 상대들이었다.

MBK 경영진들과의 어색한 조우를 뒤로하고 엘리베이터에 올랐지만 찜찜함을 떨칠 수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됐다. 협상장에 도착하자 테스코 관계자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방금 MBK파트너스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하룻밤 사이 ‘한국 역사상 최대 M&A’의 승자가 뒤바뀐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 했던 김병주 회장의 승부수가 통한 결과였다. 전날 밤 테스코와 HSBC증권을 찾은 김병주 회장과 김광일 대표이 던진 마지막 승부수는 파격적이었다.

어피너티가 제시한 모든 조건을 MBK가 동일하게 받아들임과 동시에 최대 수천억원에 달할 수도 있는 노조 위로금도 부담하겠다는 것이었다. MBK와 어피너티가 최종적으로 제시한 인수가격은 거의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노조 위로금을 부담한다면 MBK의 제시가격이 1000억원 이상 높아지는 효과가 있었다.

어피너티에 ‘우선협상대상자가 됐으니 내일 아침 사인하러 오라’ 통보까지 했던 테스코가 MBK와 밤새 밀담을 나누는 ‘결례’를 범한 것도 수천억원을 더 받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밤샘 협상 끝에 김병주 회장과 김광일 대표가 단독협상권을 획득하는 서류에 서명을 한 순간이 어피너티의 두 대표가 협상장 호텔로 들어섰을 때였다. 어피너티 대표단이 도착했단 소식을 들은 테스코가 허둥지둥 MBK 대표단을 내보냈지만 양측이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의전실수를 피하기엔 늦은 때였다.

◆김병주 회장의 '제왕적 리더십'이 승인
경쟁이 치열한 M&A 거래에서 협상 막판 승자가 바뀌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하지만 홈플러스 인수전과 같이 8조원에 달하는 금액이 걸린 거래에서 MBK 만큼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는게 투자은행(IB) 업계의 증언이다.

IB업계가 꼽는 MBK의 첫번째 대역전승 비결은 김병주 회장의 존재다. 최종협상장에서 테스코와 HSBC증권이 마지막까지 반신반의했던 대목은 MBK가 즉석에서 제시한 인수조건을 정말 지킬 수 있느냐였다. MBK는 싱가포르 테마섹, 캐나다 CPPIB 등 국부펀드 및 연기금과 연합군을 구성하고 있었다.

PEF의 특성상 새로운 협상조건을 제시하려면 이들 컨소시엄 파트너는 물론 신한 우리은행 하나대투증권 등 인수금융 파트너 및 펀드 투자자(LP)들에게까지 새로운 인수구조에 대한 동의를 받아야 했다. 하룻밤 사이 공동 투자자들과 새 조건을 협의하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하지만 김병주 회장은 ”공동 운용사(GP) 및 LP들의 동의는 걱정말라. 내가 다 설득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리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지 닷새 만인 9월7일 본계약을 체결함으로서 약속을 지켰다. 어피너티였다면 컨소시엄 파트너인 KKR과 투자자들에게 동의를 구하느라 MBK와 같이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리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IB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IB업계 관계자는 “‘제왕적’으로까지 묘사되는 김병주 회장의 강력한 지배력이 홈플러스 인수전의 최대 승인이 된 셈”이라며 “2009년 오비맥주 인수전에서 KKR-어피니티 컨소시엄에 패했던 과거도 설욕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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