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소비절벽도 잘못된 이론
일자리와 부는 생산성이 결정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2018 인구절벽이 온다》는 책은 꽤 팔렸다. 생산자도, 투자자도, 소비자도 사라지는 죽음의 경제가 온다는 주장이다. 베이비부머의 퇴직과 함께 경제 위기가 본격화한다는 것이다. 증거는 도처에서 발견되고 가설은 보강된다. 인구절벽론은 때마침 디플레이션 공포와 상승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한 번도 황금시대를 예상한 적이 없다. 음산한 저주의 노래는 곧 잊혀진다.
맬서스가 《인구론》을 썼던 1798년은 도시가 태어나 팽창하던 시기다. 런던 인구 100만명은 충격이었다. 배양기의 세균처럼 인간은 도시에서 자꾸 불어났다. 인간은 식량의 한계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번식만 거듭한다는 것이다. 맬서스는 종교가였기에 저주는 그의 직업적 소명이기도 했다. 그러나 너무 나갔다. 굶주림은 자연법칙이어서 어떤 구빈법(救貧法)도 무의미하다는 주장을 폈다. 적자생존과 우생학을 혼동하는 일은 지금도 종종 일어난다. ‘자본주의 4.0’ 같은 주장들도 진화와 계획을 혼동하는 오류의 전형이다. 자연법칙인 기아와 정치선택인 구빈을 혼동하는 것도 그렇다. 그러나 다행히도 인간은 통계학적 예언에 종속되는 존재가 아니다. 모든 종류의 점술가들이 미래를 예측한다고 주장하지만 꽤 그럴듯하게 맞히는 것은 언제나 과거에 대해서만 그렇다.
60년대, 70년대는 좌익 사상이 자연과학 이론에까지 침투한 시기다. 폴 에를리히의 《인구폭탄(Population Bomb)》도 이때 태어났다. 자원고갈, 환경오염, 인구폭발은 동심원적 종말주의 교의다. 과학적 언어로 포장돼 있지만 실은 유사(pseudo) 종교다. 경제성장의 새로운 결과들, 다시 말해 수명연장과 유아사망의 급격한 감소가 팩트로 확정되기 전만 해도, 오직 성욕이 문제였다. 그러나 돌연 인구감소가 새로운 문제로 떠올랐다. 과잉이 아니라 저출산 고령화가 문제라는 것이다. 공포와 호들갑을 만들어 내야 사람들은 비로소 안도하는 것 같다.
처음에는 양육 부담이 저출산의 원인이라는 주장이었다. 한국 정부도 근 10년간 150조원을 퍼부었다. 그러나 지금은 결혼 기피, 다시 말해 젊은이들이 섹스를 안 한다는 관찰이 압도하고 있다. 결혼은 안 해도 좋으니 애라도 낳아라(미혼모 보호), 불임은 나라에서 치료해준다, 더구나 신혼부부들에게 섹스의 장소(주택)까지 싸게 제공하겠다는 식이다. 이런 일에 또 200조원을 쓸 계획이다.
노인정책에도 허구가 많다. 고령화가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주장은 논리적이다. 그러나 노인이라고 모두가 가난하고 무능력한 것은 아니다. 지출능력은 오히려 크게 높아진다. 미국 퓨리서치에 따르면 미국 내 65세 이상의 부는 크게 불어났다. 소위 부유하고 건강한 노인의 출현이다. 1970년 55%에 달하던 저소득층 노인 비중은 2015년 현재 40%다. 이 米搔?통해 맥킨지는 앞으로 75세 이상 노인 소비는 매년 5.1%씩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소비자가 사라진다는 주장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가?
저출산의 결과로 청년 일자리가 남아돌아간다는 것인가? 바보가 아니라면 이런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일자리는 모자라지 않았던 적이 없고 실업인구는 넘치지 않았던 적이 없다. 이것이 진짜 현실이다. “인구가 없다! 청년이 사라진다!”는 잘못된 주장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가. 그렇다면 저출산 시대에는 청년 실업이 제로를 향해 축하할 만한 감소세를 보일 것이라는 말인가. 이는 엉터리 이론이다. 정년을 5년 연장한 것만으로도 지금 청년 실업을 걱정할 정도인 것이 현실이다. 사실 이것도 일시적 착시다.
일자리와 부(富)는 생산성이 결정하는 것이지 머릿수가 결정하지 않는다. 인구의 진실은 이것뿐이다. 저출산과 고령화에 대한 걱정은 ‘과거 조건’에서의 관점이다. 칠성판에 올랐을 연세의 노인들이 지금은 북한산 능선마다 먼지를 일으키고 있다. 과잉인 것은 노인이 아니라 노인 걱정이다. 인간은 조건을 재구성하면서 세계를 만들어 낸다. 인간은 자연법칙을 넘어선다.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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