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호의 경제정책관] "이런 측면도…저런 측면도…" 정책 현안 얼버무린 유일호

입력 2015-12-22 18:26  

현장에서

경기부양·구조조정·가계부채 등 시급한 현안에
"양쪽 다 중요…이분법적으로 생각할 일 아니다"
재정 건전성·포퓰리즘 조세 경계 의지는 확고

이승우 경제부 기자 leeswoo@hankyung.com



[ 이승우 기자 ]
유일호 새누리당 의원이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임으로 내정된 지난 21일 밤, 서울 잠실동 그의 자택 인근 카페에서 즉석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인터뷰를 위해 기자들이 집 앞에 몰리자 유 후보자가 “편하게 대화를 나누자”며 자청한 자리였다. 관료 출신 장관 후보자들이 말실수를 할까봐 언론을 극도로 피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정치인다운 여유가 엿보였다.

기자들이 단기 경기부양책과 재정 건전성 유지, 구조개혁 추진, 가계부채 해결 방안, 미국 금리 인상 후속대책 등 각종 경제 현안들에 대한 그의 소신을 물었다. 유 후보자는 모든 질문에 막힘 없이 답했다. 하지만 1시간가량 그의 말을 듣고도 대다수 기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몇몇 기자들은 간담회가 끝나고 나오면서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고도 했다. 어떤 이슈에 대해서도 명확한 소신과 정책 방향을 찾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유 후보자는 학자 출신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재정학 관련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재정 전문가다. 본인 스스로 “보수적인 재정학자”라고 할 정도로 소신이 강했다. 예컨대 단기 경기부양책보다는 재정 건전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고소득자의 탈세를 비판하는 동시에 ‘포퓰리즘 조세’도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날 간담회에서는 중요한 정책 현안에 대해 ‘이런 측면도 있고, 저런 측면도 있다’는 모호한 견해를 되풀이했다. “경기부양이 우선이냐, 구조조정이 우선이냐”는 질문에 “단기적 경기부양도 중요하고 중장기적 초석을 위해 구조조정도 시급하다”고 답했다. “경기부양과 재정 건전성 확대는 서로 충돌하는 것 아닌가”라고 되묻자 “경제위기 때는 모두가 ‘케인지언’(수요를 일으키기 위해 재정확대를 주장하는 경제학자)으로 돌아섰다”는 모호한 답이 돌아왔다.

“지금이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다르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다른 측면도, 같은 측면도 있다”고 말했고, “최경환 부총리가 한국을 고(高)복지 사회라고 했는데 어떤 의견인가”라고 묻자 “상대적인 개념이어서 쉽게 말할 문제는 아니다”며 논점을 비켜갔다. 그의 답변을 듣는 내내 학자 시절 소신보다는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정치인 특유의 중간자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경제학 교과서에는 ‘세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다른 조건이 변하지 않는다면’이라는 뜻의 라틴어다. 경제현상에 영향을 주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에 꼭 필요한 변수 외에는 다른 요인을 상수로 간주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세테리스 파리부스’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미국의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은 “한쪽 손(hand)만 있는 ‘외팔이’ 경제학자는 없느냐”고 푸념한 적이 있다. 정책 효과에 대해 “한편으론(on the one hand) 이렇지만, 다른 한편으론(on the other hand) 이런 효과가 있다”며 상반된 답을 함께 내놓는 경제학자들에 대한 농담 섞인 불만이었다.

유 후보자는 위기 국면에서 경제팀의 새 수장을 맡게 됐다. 그의 앞에는 산적한 과제들이 놓여 있다. 대내적으론 구조개혁을 완수해야 하고, 대외적으로도 미국 기준금리 인상과 중국 경기 둔화 등 ‘G2(미국과 중국)리스크’에 대응해야 한다.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제는 경제학자로서 ‘양쪽 손’을 내놓기보다는 확고한 소신을 갖고 어느 쪽 손을 내놓을지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한 전직 고위 경제관료는 “내정 이후 첫 마디가 ‘최 부총리의 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였지만 지금처럼 위기 요인들이 중첩한 상황에선 정책 방향과 우선순위를 분명히 정한 뒤 선제적으로 위기에 대응하는 공격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며 “박근혜 정부 임기 후반이라고 관리형 정책 모드를 유지할 경우 자칫 위기를 더 키울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승우 경제부 기자 lees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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