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법으로 밥먹기 힘들다

입력 2015-12-23 17:53  

김병일 사회부 부장대우 kbi@hankyung.com


김진태 전임 검찰총장이 퇴임 직전에 책을 한 권 펴냈다. ‘밥먹기 어렵다’는 뜻의 중국어 ‘츠판난(吃飯難)’이 책 제목이다. 중국과 한국의 유명 스님들 및 문사들의 글에 자신의 해설을 붙인 것이다. 보관 중이던 좋은 글들을 정리하다 아예 책으로 펴냈다고 한다.

그는 사석에서도 종종 “세상사 밥 먹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있을까”라고 말했다. 묘하게도 그가 최근 직면한 난감한 상황과도 맥이 닿아 있는 것 같다.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장이 “변호사 개업을 자제해 달라”고 압력을 넣고 있어서다. 김 전 총장은 총장으로 임명되기 직전 잠깐 동안 변호사로 개업한 적이 있어서 대한변협 등록절차 없이 신고만 하면 변호사로 활동할 수 있다. 김 전 총장은 “아직 자식들이 결혼을 안 해서…”라고 말 못 할 속사정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법(法)으로 밥 벌어먹기 힘든 시대다. 출세하거나 돈 벌어 보겠다고 로스쿨에 진학하는 사람은 요즘 찾아보기 어렵다. 변호사 자격증만으로는 취업조차 쉽지 않다. 자격증이 취업에 플러스 요인은 되지만 더 이상 결정적 변수는 못되기 때문이다. 변호사를 7급 공무원으로 뽑겠다는 한 지방자치단체의 채용 공고를 보고 로스쿨생들이 거세게 반발한 적이 있지만 이 역시 시간문제다.

변호사업계에 ‘공짜점심’도 사라지는 추세다. 2012년 대법원 판결로 세무사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변호사는 더 이상 세무사 등록을 할 수 없게 됐다. 변호사의 변리사 자격 자동취득 제도도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은 변호사 자격만 있으면 특허청 등록을 통해 변리사 자격까지 거저 생기지만 앞으로는 일정 기간 실무수습을 이수하지 않으면 변리사 자격을 취득할 수 없도록 하는 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를 통과했다. 교육부는 사이버로스쿨 야간로스쿨 등을 설립해 로스쿨 진입 장벽을 더 낮춘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일반 직장인들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변호사 시험에 도전할 수 있게 된다. 이쯤되면 변호사는 더 이상 ‘용’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법시험 존치론자들이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법조인 자질의 중요성이 감소한 것은 결코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무죄가 선고된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 판결이나 한일청구권협정 조항에 대한 위헌 여부 결정은 한·일 관계를 좌우할 정도로 파급력이 크다. 내년부터 차례로 유럽연합(EU)과 미국에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판이 더 커진다. 도토리 키재기식 집안싸움은 의미가 없어진다. 싫어도 글로벌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더 똑똑해져야 하고 글로벌 역량을 갖추기 위해 더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현행 로스쿨이 걱정이다. 변호사 시험에 매달?시험과목 이외 공부와는 담을 쌓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우려스럽다. 기성세대의 잘못도 크다. 법으로 정한 사시 폐지 기한을 또다시 유예하겠다는 정부 발상은 어처구니없다.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법조3륜(법원, 검찰, 변호사업계)의 행태는 사라져야 할 구태다. 로스쿨 학생들 상당수가 여전히 판검사나 대형 로펌을 꿈꾼다는 얘기가 들린다. 정부 정책이 불만스럽다고 자퇴서부터 제출하고 보는 행태도 미래 법조인들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선 미래가 없다. 법조문을 달달 외워 법조인이 된 선배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김병일 사회부 부장대우 k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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