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머금고 9급공무원 포기
군 복무 중 합격통지 기뻤지만 훈련 도중 다쳐 임용 끝내 포기
세무대 출신 첫 서울청장
세무대 1기 출신…'세제통(通)' 불려…연말정산간소화서비스 등 업적
못말리는 '워커홀릭'
"일 완벽하게 못끝내면 잠 못자"…"국세청에서도 최고 세법 전문가"
[ 임원기 기자 ]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고교 졸업 후 농사를 짓다가 군에 입대했다. 입대 전 치른 9급 공무원 시험에서 합격 통지를 받았지만 군 복무 중 몸을 다쳐 임용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스물한 살 청년. 5개월 동안 꼼짝없이 병원에 누워 피눈물을 쏟아야 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난 23일 국세청 인사에서 서울지방국세청장으로 내정된 김재웅 중부지방국세청장은 흔히 하는 말로 ‘흙수저’였다. 본인 스스로도 웃으며 인정한다. “요즘 말로 하면 저는 전형적인 흙수저 출신이지요. 하하.”
1958년 경기 고양시에서 태어난 그는 송도고를 졸업한 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을 포기하고 집에서 농사를 거들었다. 세상에 나가 다른 직업을 갖고 싶었던 그는 9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다. 자신은 없었다. 1979년 하사관으로 군에 입대했다.
하지만 전방에서 훈련 도중 몸을 다쳐 수술을 받고 5개월간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하필이면 이때 공무원 시험 합격 통지서가 날아왔다. “꼼짝없이 누워만 있었습니다. 몸이 정상으로 돌아올지도 모르는 상태였고요. 이대로라면 공직은 무리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공무원 임용을 포기하겠다는 전화를 했어요. 그땐 왜 그리 하염없이 눈물이 나던지….”
자포자기 심정이 된 그에게 아버지의 한마디가 큰 위로가 됐다. “보살펴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집에 와서 쉬거라.” 한동안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누워서 생활했지만 약관의 젊은이가 그대로 인생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때마침 그해(1981년) 국립세무대가 신설됐다. 학비가 전혀 들지 않는다는 얘기가 김 청장을 흔들었다. 이를 악물었다. 누워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기어코 합격증을 받아들었다.
1983년 세무대 1기로 졸업하고 8급 특채로 국세청에 들어간 그의 첫 직장은 남산세무서였다. 이듬해 재무부 세제실로 옮겨 1998년까지 14년 동안 세제업무를 맡았다. 국세청에 복귀해서는 국세청 역사에서 손꼽히는 굵직한 일을 맡아 처리했다. 대표적인 게 ‘연말정산 간소화서비스’다. 김 청장은 당시 원천세과 1계장으로 근무했다. 종이로 써서 냈던 연말정산 서류작업을 온라인으로 할 수 있게 했다.
이듬해엔 일자리와 연계한 빈곤층 지원책으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근로장려세제(EITC) 업무를 맡았다. 2012년에는 차세대국세행정추진단장으로 부임해 통합 세금 신고·납부가 가능 ?전산 시스템을 구축했다.
국세청 내 최고 요직으로 꼽히는 서울지방국세청장에 세무대 출신이 임명된 것은 김 청장이 처음이다. 입지전적인 요소는 거의 모두 갖췄다. 하지만 그의 이런 스토리를 아는 사람은 국세청 내에도 거의 없다. 평소 자신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그의 성격 때문이다.
선후배, 동료들 사이에서 그는 ‘못말리는 워커홀릭(일중독자)’으로 통한다. 중부청장으로 재직한 올해 수원 중부청장실의 불은 밤 11시가 넘도록 꺼지지 않았다고 한다. “완벽하게 일을 끝내지 않으면 집에 가서 잠을 잘 수 없다”며 밤 늦도록 보고서 검토에 매달렸기 때문이다.
그가 차세대국세행정추진단장으로 일한 2013년에는 서울 합정동 사무실에 간이침대를 들여놨고 주말에도 나와서 일을 했다.
전산정보담당관 시절 그와 함께 호흡을 맞춘 한 국세청 직원은 “공직자로서 어떻게 처신하고 일해야 하는지 실천을 통해 보여주는 분”이라며 “세금 전문가들이 모인 국세청에서도 최고의 세법 전문가로 통한다”고 말했다.
김 청장은 24일 기자와 통화하면서도 인터뷰 요청은 극구 사양했다. “어려운 환경에서 성공한 사람은 많습니다. 저는 그저 세무공무원 중 한 명일 뿐입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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