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림 "기부요?…제가 골프채 놓을수 없는 이유죠!"

입력 2015-12-24 18:30  

K골프스타 도전! 2016 (4) '기부천사' 김해림

2부투어부터 상금 10%씩 떼내 이웃 도와
하루 계란 한 판씩 먹고 거리 늘린 '독종'
올해 준우승만 두번…"내년엔 첫승 선물"



[ 이관우 기자 ]
김해림(26·롯데)은 잘 울지 않는다. 어릴 적 별명이 ‘미소천사’였다. 지난 10월25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메이저 대회인 KB금융스타챔피언십에서 다 잡았던 우승컵을 전인지(21·하이트진로)에게 내줬을 때다. 연장으로 갈 수도 있었던 18번홀 파 퍼팅이 홀컵 1㎝ 옆에 멈춰섰다. 데뷔 8년 만에 찾아온 첫 승 기회를 날린 그는 그러나 환하게 웃으며 보기 퍼팅을 마무리했다. 팬들이 울었다.

지난 14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해림은 “때가 아니었던 것 같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저보다 팬들이 더 안타까워했어요. 내년엔 기회가 또 올 거라고 제가 오히려 팬들을 위로해 줬어요.”

김해림은 요즘 ‘기부천사’로 더 자주 불린다. 어려운 이들을 보듬는 그의 마음씨가 뒤늦게 알려졌다. 갤러리도 없고, 중계방송도 잘 되지 않는 2부 투어를 뛸 때부터 상금의 10%씩을 떼어 주변을 도왔다. 2011년 동네 군청에 무작정 찾아가 건넨 610만원이 시작이었으니 올해로 5년째다. 2013년엔 1억원 이상 기부자들의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에도 가입했다.

올해도 상금의 10%가 넘는 4400만원과 버디할 때 팬들이 1000원씩 모아준 돈을 합해 6000여만원을 사회복지시설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에 냈다. 청주에서 사회복지시설에 기부금을 낸 그는 다음날 부산으로 달려가 아동복지시설에서 청소하고 아이들을 업어줬다. 그야말로 ‘전국구 기부천사’다. 남을 돕겠다고 시작한 일이 지금은 골프를 하는 이유가 됐다.

김해림은 “성적과 상금에 연연하지 말고 인생의 의미를 완성해 보라는 부모님의 권유로 시작했는데, (기부로) 제가 오히려 더 도움을 받은 것 같다”고 했다.

성적이 갈수록 좋아졌다. 정규투어를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한 2012년 28위였던 상금 순위는 2013년 25위, 지난해 17위로 올라섰다. 올해는 4억1787만원을 벌어 9위로 급상승했다. 준우승 두 번 등 10위권 안에 12번이나 이름을 올린 덕에 대상포인트에서는 전인지 이정민(23·비씨카드)에 이은 3위다. 동료 골퍼들은 이구동성으로 “내년에 더 기대되는 선수”로 그를 꼽는다.

‘착한 DNA’ 외에도 타고난 게 ‘운동 DNA’다. 친구들보다 5~6년 늦은 중학교 3학년 때 골프를 시작했지만 3년 만에 프로자격을 따냈다. “골프가 너무 재미있어서 쉽게 배웠다”는 그는 동그란 공으로 하는 운동은 다 좋아한다. 농구는 어두컴컴한 동네 운동장에서 혼자 4시간 넘게 하다 끼니를 거른 적도 있다. “키가 좀 더 컸으면 농구선수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그는 말했다. 중학교 ?쑥쑥 크던 키는 167㎝에 머물렀다.

순둥이지만 한번 마음먹으면 그대로 실행에 옮기는 ‘독기’도 있다. 드라이버 비거리를 늘리기 위해 2013년 날마다 계란을 한 판씩 먹는 승부수를 던졌다. 그는 “밥 세 끼를 다 먹고 흰자만 따로 떼내 중간중간 또 먹었더니 몇 달 새 8㎏이 증가하더라”며 “비거리도 20m나 늘었다”고 말했다.

230야드에 머물던 비거리가 250야드대로 늘어나면서 자신감도 불었다. 마음먹으면 280야드 이상도 날릴 수 있게 되면서 파5 공략이 수월해졌다. 요즘도 매일 웨이트트레이닝을 1~2시간씩 빼먹지 않고 하는 이유도 비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김해림은 순전히 골프를 위해 2008년 서울에서 충북 오창으로 이사했다. 전국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하기 딱 좋은 중간 지점이라고 생각해서다. 가족도 함께 이사했다. 그는 “대회에 참가하기에도 편하지만 전국 각지로 봉사활동하러 다니기에도 편한 것 같다”며 웃었다.

내년 목표는 물론 생애 첫 승이다. 그는 눈물 젖은 빵을 먹던 2부 투어에서 1부 투어로 올라오면서 ‘첫 승 상금을 모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우승 경험이 있는 선배들이 다들 그러세요.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이 인내라고요.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보면 어느 날 선물처럼 머리맡에 놓여있는 게 우승이라고요. 내년엔 꼭 그 선물을 받고 싶어요.”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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