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뜨거운 태양 하나

입력 2015-12-31 17:27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박두진은 ‘해’의 첫머리에서 이글이글 솟는 태양을 ‘앳된 얼굴 고운 해’라고 노래했다. 어둠을 살라먹고 말갛게 씻은 얼굴로 솟는 해는 어린 생명과 푸른 희망을 상징한다. 그 속에서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의 ‘사슴’과 ‘칡범’이 뛰어논다.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앳되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는 다짐도 거기에서 나온다. 그가 이 시 한 편으로 ‘유언 없이 죽을 수 있는 인간이 됐다’는 극찬을 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해 첫날 떠오르는 해는 더욱 붉다. 새해 아침은 ‘찬란한 태양을 왕관처럼 쓰고’(송수권 ‘새해 아침’) 온다.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김종길 ‘설날 아침에’)

한자로 태양(太陽)은 세상의 모든 음양(陰陽) 중에서 가장 큰(太) 양(陽)을 가리킨다. 제일 빛나는 것이며 밝고 뜨거운 것이니 만물이 살아 움직이는 봄(春)을 예비한다. 방향을 가리키는 한자 동(東)이 나무(木) 사이로 떠오르는 해(日)에서 비롯된 것도 의미심장하다. 동녘 동(東)의 음이 움직일 동(動)과 같으니 더욱 신묘하다.

괴테는 태양을 ‘가장 지고한 것의 한 계시’라고 표현하면서 “태양 속에 있는 신의 빛과 생산 능력을 숭배한다”고 했다. 그래서 ‘지중해의 태양을 통해 근대의 여명을 느꼈다’고 했을까. 월트 휘트먼이 ‘우리도 태양처럼 눈부시고 거대하게 떠올라/ 동틀녘의 고요와 서늘함 속에서 오 나의 영혼을 발견했다’고 노래한 것도 마찬가지다.

새 출발의 지평에 선 사람은 늘 새로운 다짐을 한다. ‘1월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학교에 입학하여 새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마음으로 공부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을 맞던 날의 떨림으로 계속된다면,// 첫출근하는 날,/ 신발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일을 한다면…’(정채봉 ‘첫마음’)

이렇게 초심(初心)을 되새기며 구두끈을 새로 매는 한 해의 첫 아침. 우리 모두 시인처럼 마음속에 뜨거운 태양 하나 띄워 올려보자. 이글이글 앳된 얼굴로 곱게 솟는 희망의 해를.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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