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저성장의 장기화' 한국병 치유책은 구조개혁뿐

입력 2016-01-07 17:58   수정 2016-01-08 05:23

'대균열' 세계경제…원자재가↓·달러유출 신흥국 위기
일본 '잃어버린 20년' 되밟는 구조적 저성장 한국 경제
선제적 구조개편 통해 새 성장동력 확충에 매진해야

신민영 <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 부문장 >




2000년대 초중반 호황을 누렸던 세계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후 최근 수년간 3%대 초중반에서 힘겨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세계경제 저성장세는 흔히 ‘새로운 정상(new normal)’이라 불리지만 길게 본다면 ‘정상으로의 복귀(back to normal)’라는 성격이 강하다. 지난해까지 최근 4년간 세계 경제성장률 3.4%는 1980년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30년간의 평균 성장률과 정확히 일치한다. 최근이 특별히 나쁜 것이 아니라 금융위기 이전 기간이 오히려 매우 좋은 시기였다는 이야기다. 중국 인도와 같은 신흥국 경제의 고속성장, 선진국의 자산버블, 빠른 글로벌화 등에 힘입어 당시 세계경제가 유례없는 성장세를 보였다.

그러나 이후 주택가격 폭락과 가계의 디레버리지(부채 축소) 등 호황의 부작용과 수습과ㅐ?이어졌다. 글로벌화가 둔화되고, 2014년부터는 원자재가격 급락으로 브라질 러시아 등 자원수출국 경제가 붕괴되며 성장세를 끌어내리고 있다.

올해 세계경제는 이런 구조적인 요인에 경기사이클상의 하락 요인이 더해지면서 더욱 어려운 흐름이 예상된다. 무엇보다도 지난 수년간 호조세를 보이며 세계경제를 떠받쳐온 미국 경제가 점차 힘에 부치는 모습이다. 추가적인 고용확대 여력이 줄어들며 임금상승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누적된 달러 강세로 수출 부진이 예상되는 데다 기업 수익성도 낮아져 고용과 투자가 제약될 전망이다.

리스크 요인으로서 신흥국 경제의 위기 가능성을 꼽을 수 있다. 과거에는 세계 1, 2위 경제대국인 미국과 유럽이 통상적으로 비슷한 경기 흐름을 보였다. 그러나 2000년대 새로이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이 최근 뚜렷한 성장 저하세를 보이면서 금리인상에 나서고 있는 미국과 차별화되고 있다. 이런 대균열(great divergence)은 중국의 투자 붐에 의존해 원자재와 중간재를 수출해 성장해왔거나 미국으로부터 값싼 자본이 대규모로 유입된 신흥국들에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

경착륙 우려되는 중국 경제

한발 더 나아가 중국 경제의 경착륙도 우려된다. 중국은 지난 30여년간 지속된 고속성장이 한계에 봉착, 기업부채와 부도가 급증하는 가운데 부동산 버블 붕괴 가능성도 상존하고 있다. 제조업의 성장 속도가 느려지면서 서비스와 내수 위주로 성장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지만 서비스의 지속적 고성장 가능성이 의문을 사고 있다. 리먼사태를 겪은 미국은 정부의 과감한 정책과 사회적, 제도적 유연성을 바탕으로 곧 되살아날 수 있었지만 공공부문의 비중이 매우 높고 시장 메커니즘이 덜 작동하는 중국 경제의 연착륙이 이뤄질지는 확실치 않다.

나름 견실한 성장세를 보인다고 해도 미국의 세계경제 파급력은 과거에 비해 많이 약화됐다. 세계경제 내 미국 경제의 비중이 1980~90년대 평균 28.5%에서 2014년 현재 22% 수준으로 낮아졌으며 미국의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도 15.4%에서 12.6%로 하락했다. 대균열의 또 다른 축인 유럽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통화완화의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각국이 같은 정도의 통화완화를 할 경우 환율 효과는 상쇄된다고 해도 자국의 인플레이션 기대를 높여 실질금리를 낮춤으로써 수요를 자극할 수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수요가 부진한 현 상황에서 통화완화를 통한 자국통화의 약세는 다른 나라들에 디플레이션을 수출함과 동시에 환율의 불안정성을 높여 교역을 위축시키고 성장세를 억누르게 된다.

이런 요인들이 2016년 세계경제의 하향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반면에 세계경제의 흐름을 전환시킬 수 있는 모멘텀을 찾기는 어렵다. 유가 하락이 가계의 구매력을 늘리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추가적인 유가 약세는 산유국 경제를 더욱 압박해 세계경제의 위협 요인으로 간주되고 있다. 요컨대 2014년 3.4% 성장한 세계경제는 지난해 3.1%에 이어 2016년에는 이보다도 낮은 2.9%의 성장세가 예상된다.

내수가 만성적인 부진을 보이는 가운데 세계경제가 한층 더 둔화되리라는 전망은 2016년 한국 경제 성장률이 지난해보다 낮아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지난해 하반기의 내수 호조는 추가경정예산과 소비세 인하 등 정책 변수에 힘입은 것으로써 지속되기 어렵다. 한국 경제의 부진한 성장세가 이어지고 물가상승률이 낮아지면서 명목성장률 흐름이 20년 시차를 두고 일본과 똑같아지고 있다. 외환위기 때도 줄지 않았던 제조업 매출이 2년 연속 줄어들고 있고 불황형 소비의 대명사인 편의점의 도시락 매출이 50% 이상 늘어나고 있다. 저성장과 활력 저하라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망령이 맴돌고 있다.

저성장·활력 저하란 ‘망령’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Aa2로 올렸으나 기뻐할 일만은 아니다. 국가신용등급은 정부의 채무상환 능력을 중점 반영한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6%로 상대적으로 재정 건전성이 양호하다. 경상수지흑자가 GDP의 8%에 달하는 등 대외경제부문의 안정성 역시 탁월한 것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한국 경제의 안정성은 뛰어나지만 성장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빠른 고령화에다 추격-고성장 모델이 더 이상 작동되지 않는다. 중국 등 경쟁국의 경쟁우위가 전면화되고 있지만 혁신과 새로운 성장동력 확충은 미흡하다.

1990년대 일본 역시 재정 건전성이나 경상수지 등 거시경제의 대내외적 안정성 면에서는 양호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1980년대 후반 평균 5% 수준으로 성장하던 일본 경제가 1992년부터 0%대로 하락했어도 최상급의 국가신용등급은 유지됐다. 저성장이 이어졌지만 노동, 금융 등 구조개혁이 지체되고 포퓰리즘정책으로 재정이 악화됐다.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한 1998년에야 마침내 국가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기에 이르렀다.

구조개혁하라는 무디스의 경고

현재 한국 경제는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의 외환위기 직전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외환위기가 외화 유동성 부족으로 대변되는 급성병이었다면 지금의 위기는 저성장의 장기화라는 만성병이다. 급성병은 수술을 잘 받으면 낫지만 만성병은 수술조차 어렵다. 고통이 따르는 개혁의 시급성을 절실히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외환위기 당시처럼 비효율을 제거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리더십이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기도 쉽지 않다. 새로운 경제팀이 출범했다. 주체가 바뀌었다고, 한국 경제의 병이 만성병이라 해서 개혁의 동력이 약해져서는 안될 것이다. 구조개혁에 실패할 경우 신용등급을 내릴 것이라는 무디스의 경고도 귀담아들어야 할 것이다. 언젠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된다면 일본의 예에서 잘 나타나듯이 그땐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중환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신민영 <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 부문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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