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ERI 경영노트] 대기업 '스타트업의 혁신'을 배우기 시작하다

입력 2016-01-08 07:00  

전재권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대기업은 대체로 의사결정이 늦고 변화가 어렵다. 조직이 오래되고 규모가 클수록 심해지기 마련이다. 수많은 이해관계자의 갈등과 조정, 복잡한 절차, 층층이 쌓인 보고 체계, 신화처럼 굳어진 과거의 성공 방식 등이 혁신을 위한 의사결정을 지연시킨다. 지난한 내부 과정을 거치고 나면 그다지 혁신적이지도 않고 때늦은 혁신안이 채택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반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은 대기업과의 비교가 무색할 만큼 빠르다. 작고 가벼운 만큼 고객과 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한다. 빠른 만큼 비용도 적게 든다. 새로운 가치 창출에 더 집중할 수 있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의 일하는 방식에 주목하는 이유다. 스타트업 구루 에릭 리스의 스승인 스티브 블랭크는 빠르게 배우며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스타트업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대기업이 향후 최대의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제너럴일렉트릭(GE)은 스타트업에서 생존 방식을 찾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2012년 스타트업 구루 에릭 리스와 제품 개발 속도를 촉진하는 패스트웍스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완성도는 낮지만 어느 정도 기능이 구현된 제품을 빨리 만들고 고객에게 피드백을 騁?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를 통해 고객 요구에 맞는 제품을 신속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GE는 2014년 고객과 시장에 더 유연한 대응을 위해 퍼스트빌드라는 자회사를 설립했다. 고객의 피드백을 받아 제품을 빠르게 개발한다는 점은 패스트웍스와 비슷하다. 내부 구성원을 중심으로 기존의 방식을 개선하는 패스트웍스와 달리 퍼스트빌드는 온라인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내부외부 인원의 참여를 통해 제품 및 개발 방식에 대한 새롭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험한다. GE는 퍼스트빌드 설립 후 1년간 제안한 800여개 아이디어 중 8개를 상품화했고, 현재 40여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소니는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도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사업 악화와 잦은 구조조정 등으로 침체된 분위기를 타개하고 혁신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활동의 일환이다. 2015년 ‘퍼스트 플라이트’라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을 만들어 일부 제품 개발 의사결정을 대중에게 맡기기 시작했다. 고객에게 아이디어를 직접 평가받아 신속하게 제품이 개발되도록 했다. 구성원의 아이디어를 웹사이트에 공개하고, 개발할 제품을 대중이 선정하면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후원자들은 웹사이트에서 진행상황을 볼 수 있다. 완성된 제품은 온라인에서 판매된다. 대중의 피드백을 직접 받기 때문에 시장 조사, 내부 보고 및 의사결정에 따른 지연 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

소비재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유니레버는 2014년 ‘파운드리’라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는 유니레버 400여개 브랜드의 변화 촉진을 위해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주선하는 플랫폼 역할을 수행한다. 수많은 브랜드의 개선 과제를 스타트업과 함께 수행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다. 파운드리의 프로세스는 유니레버에서 제시한 과제에 스타트업들이 해결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최종 선정된 기업과 파일럿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성공하면 투자를 늘려 규모를 키우는 식이다. 유니레버는 신속하고 낮은 비용으로 과제를 해결할 수 있고, 스타트업은 초기 자금과 마케팅 전문가의 멘토링을 받아 자신의 브랜드, 마케팅 전략, 제품 로드맵을 개발할 수 있다.

코카콜라는 2013년 ‘파운더즈’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협업의 범위를 스타트업에서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실행하는 ‘스타트업 방식을 체득한 기업가’로 넓혔다. 코카콜라는 변화와 성장을 위한 방안을 이들과 고민하고, 이들이 스타트업을 만들어 실행하도록 지원한다. 이 스타트업들은 프로젝트에 대한 지식재산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향후 사업 모델의 타당성이 검증되고 규모가 커지면 코카콜라는 투자에 대한 일정 지분을 갖는 식이다. 스타트업의 색채를 살릴 수 있도록 이들을 통제하거나 소유하기보다 협업을 통해 배우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일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혁신을 향한 여정은 기업의 시작 단계에 있는 스타트업의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다.

대기업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을 계기가 될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스타트업의 방식이라고 무조건 도입하기보다 기업 규모, 사업 영역, 인력 등의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 다만 한발 앞서 고객을 이해하고 탁월한 가치를 주기 위해 집중했던 기업의 ‘초심’은 되새겨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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