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노사정 대타협 '파기'와 '파탄' 사이

입력 2016-01-12 17:39   수정 2016-01-13 05:05

백승현 지식사회부 기자 argos@hankyung.com


“대타협 ‘파기’가 아니라 ‘파탄’이라고요? 무슨 차이가 있나요?” “국어사전 찾아보세요.”

지난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동조합총연맹에서 열린 중앙집행위원회(중집) 직후 기자들과 한국노총 관계자 사이에 오간 대화다. 이날 중집은 9·15 노·사·정 대타협의 파기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자리였다.

사전을 찾아봤다. ‘파기(破棄):깨뜨리거나 찢어서 내버림. 계약·조약·약속 따위를 깨뜨려 버림.’ ‘파탄(破綻):찢어져 터짐. 일이나 계획 따위가 원만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중도에서 잘못됨.’

한국노총이 파탄이란 단어에 집착한 것은 대타협 약속을 깨뜨린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잘못으로 깨져 버렸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당초 한 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라던 회의가 왜 3시간30분이나 걸렸는지도 짐작하게 했다.

지난달 30일 정부가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 등에 관한 2대 행정지침 초안을 공개한 직후 한국노총은 노·사·정 대타협 파기 카드를 꺼냈다. 이날 회의 분위기는 결연했다. 당장이라도 노·사·정 대타협 파기 선언을 할 태세였다. 김동만 위원장이 합의 파기의 불가피성을 설명한 오전 임원회의 때만 해도 금속노련·공공연맹 등이 호응하면서 ‘합의 파기와 노사정위 탈퇴’라는 결론으로 기운 듯했다. 하지만 중집에서 자동차노련 등 온건파의 ‘합의 유지’ 주장이 거세지면서 회의는 길어졌다. 결국 누구도 예상 못한 결론이 났다.

한국노총은 파탄 선언을 하면서 최종 파기를 1주일 미뤘다. 정부에 오는 19일까지 1주일 시간을 줄 테니 파견·기간제법을 철회하고, 2대 지침은 백지상태에서 논의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러면서 친절하게 “정부가 입장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해석도 덧붙였다.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라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예상대로 정부는 즉각 ‘노(No)’로 답했다. 모든 책임을 정부에 돌리겠다는 꼼수다.

한국노총이 명분 없는 ‘억지 파혼’을 선언하고 ‘이혼 도장’은 1주일 뒤에 찍는다는 어정쩡한 결정을 한 데 대해 노총 내부에서조차 “이게 우리 수준이지 뭐…”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백승현 지식사회부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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