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 사용 약 17만 가구
2002년 연탄 1000장으로 시작
4200만장 '따뜻한 겨울' 배달
[ 이미아 기자 ] “1~4월은 ‘연탄 보릿고개’입니다. 아무래도 후원과 여러 봉사활동이 매년 12월에 쏠리다 보니 그렇게 되죠. 하지만 한겨울과 초봄 꽃샘추위를 견디려면 ‘보릿고개’ 때 연탄이 많이 필요해요. 연말에만 반짝 관심을 받는 게 솔직히 아쉽긴 합니다.”
연탄배달 봉사단체인 연탄은행 대표를 맡은 허기복 목사(사진)는 13일 서울 중계동 서울연탄은행 사무실에서 이같이 말했다. 사무실 인근엔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 불리는 백사마을이 있다. 백사마을 1000여가구 중 약 600가구에서 연탄을 연료로 쓴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에 31개 지회를 둔 연탄은행은 연탄을 때는 소외계층에 연탄을 지원하고, 후원과 봉사를 원하는 기업 또는 단체를 연결하는 중간다리 역할도 한다.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진행하는 연탄 가구 현황 조사도 연탄은행의 주요 업무다. 허 대표는 “연탄을 때는 집이 어느 곳에 얼마나 되는지 철저히 조사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며 “그래야 연탄이 필요한 가구에 골고루 연탄을 전할 수 있다”고 했다. “봉사할 때도 체계적인 작업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사각지대가 발생하면 안 되거든요. 저희 조사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16만8000가구가량이 연탄을 연료로 쓰고 있습니다.”
허 대표는 2002년부터 연탄은행을 이끌고 있다. 그는 연탄은행에 앞서 1998년부터 노숙자와 홀몸노인 등을 대상으로 한 무료급식 봉사단체 밥상공동체를 설립했다. 노숙자의 자립을 돕기 위해 원주에 직업교육센터 ‘구두대학’과 임시숙소 ‘다시 서는 집’을 세웠고, 신용불량으로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람들이 일용직을 얻을 때 신원보증을 서 주기도 했다. 지금은 서울에 어린이 교육을 위한 ‘신나는 지역 아동센터’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그가 20년 가까이 봉사를 계속한 계기는 가난했던 대학 시절의 경험 때문이다. “집안 형편이 아주 어려웠어요. 제가 신학대 다닐 때 민주화운동이 한창이었습니다. 당시 어떤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데모를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는 비판이 아니라 대안의 시대가 될 것’이라 말씀하셨어요. 그 말에 ‘가난한 이들의 대안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요. 1994년 아무 연고도 없는 강원 원주로 가서 작은 교회의 목사를 했고, 거기서 밥상공동체와 연탄은행을 세웠습니다.”
연탄은행과 밥상공동체에선 지금까지 4200만여장의 연탄을 배달했고, 약 100만그릇의 밥을 나눠줬다. 허 대표는 “할 수 있어서,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그저 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한 것”이라며 “진정한 존경은 우리를 도와 주는 후원자들이 받아야 마땅하다”고 공을 돌렸다. “연료와 식량, 잘 곳이 없다는 건 생활의 기반이 전부 무너졌다는 뜻입니다. 저도 처음엔 급식봉사로 시작했지만 하다 보니 고구마 줄기처럼 극빈층의 어려움이 엮여 나오는 걸 봤습니다. 연탄은행도 그래서 시작했고요. 의식주와 교육, 사회구조와 의식 등 안 얽힌 게 없습니다.”
그는 연탄은행에서만큼은 종교 색채를 뺀다. 이 때문에 초기에 개신교인들에게 비난도 많이 받았다. “봉사활동은 교회 밖에서 해야 한다고 믿어요. 그래야 진정성도 더 살아나고, 결집력도 강해집니다. 하나님이 전도를 위해 이웃을 도우라고 하진 않으셨잖습니까. 봉사는 생명을 살리기 위한 나눔입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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