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오원철·김형주의 '청소년을 위한 공학이야기'
KBS 드라마 <장영실>은 조선시대 과학기술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장영실은 세종대왕이 발탁한 과학자로 활자와 천문대, 물시계 등을 만들었다. 조선 500년의 기틀을 다진 세종대왕이 우리나라 과학사에 끼친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그는 오늘날까지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꼽힌다. 이런 세종대왕의 업적이 우뚝할 수 있게 뒷받침한 한 인물이 바로 장영실이다.
기술과 과학 중시…테크노크라트 시대
최근 《청소년을 위한 공학 이야기》를 펴낸 오원철 전 청와대 제2경제수석 비서관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테크노크라트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자랑한다. 우리가 먹고 사는 산업기반 대부분이 박정희 대통령이 1970년대 초반부터 추진한 중화학 공업 정책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아는 청소년은 많지 않다.
바로 박정희 대통령의 중화학 공업과 방위산업을 입안하고 실무를 책임지고 추진한 인물이 바로 오원철 경제수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오원철 수석을 일컬어 ‘대한민국의 국보’라고 치켜세우며 그를 아꼈다.
오원철 수석이 공직생활을 하던 1960~70년대는 테크노크라트의 전성 시대였다. ‘기술관료’라고 불리는 테크노크라트(technocrat)는 쉽게 말하면 과학적 지식이나 전문기술을 소유한 공무원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은 ‘전 국민의 과학화’를 선언하며 청와대는 물론 각 부서의 장·차관직을 테크노크라트들로 포진시켰다.
수천 년간 문약(文弱)에 빠져 있던 우리 역사에서 바야흐로 기술자와 과학자가 대접받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렇게 발탁된 테크노크라트들은 중동진출 방안과 방위산업 육성, 중화학공업 발전에 혁혁한 업적을 세웠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먹을거리를 이루는 산업의 기초가 마련된 것이다. 한 세대를 앞서간 사람들의 선견지명과 노력이 후대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 눈으로 보는 한국 산업사
《청소년을 위한 공학 이야기》는 딱딱한 공학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산업사이자 경제사다. 교보문고 웹사이트에는 이미 독자들이 이 책에 대한 독자평이 제법 올라와 있었다. “내 주변의 모든 것이 공학이네요” “대한민국 경제사를 읽을 수 있는 책이네요” “공학과 경제라는 어려운 주제와 내용을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게 참 잘 풀어 쓰셨네요” 등 반응이 뜨겁다. “공학도의 꿈을 포기하지 않겠다”, “이공계 지망생으로서 큰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공학이 이렇게 큰 기여를 하게 된 걸 알게 되어 자랑스럽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이 책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가 어떻게 60년 만에 국가 경쟁력 세계 10위권이라는 기적을 이루어 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국가로 유일하게 탈바꿈한 대한민국의 경제발전 바탕에는 기계공학, 전기전자공학, 건설공학, 화학공학, 재료공학이 자리한다.
이 책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는 데 공학이 어떤 영향을 미쳤고, 그 성과가 무엇인지를 마치 아버지가 자식에게 이야기 해주듯이 자상하게 풀어준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딱딱한 공학 이야기를 이보다 더 친절하게 풀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 대목에서는 공동 집필자로 참여한 김형주 소설가의 천부적인 능력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가 공기의 소중함을 평소에 잊고 살듯이 공학이 우리 삶에 끼친 영향이 얼마나 지대했는지에 우리가 얼마나 무심했는지를 반성하게 된다. 날마다 풍족하게 쓰는 전기, 비료, 쌀, 석유를 얻기 위해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힘겨운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전자, 조선, 건설, 화학 기술이 그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배울 수 있다. 솔직히 지면 사정만 허락한다면 책의 1부에서 4부까지 소개된 경제개발사를 하나하나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공학이 어떻게 한국을 바꿨나
각 장마다 무심코 지나쳤던 내용과 미처 알지 못했던 우리의 경제 개발사가 담담하게 펼쳐진다. 가난을 떨쳐내기 위해 머리카락, 소변 등 팔 수 있는 모든 것을 팔았던 1960년대 이야기와, 선진국의 기술을 배우기 위해 동분서주 하던 수많은 경제 관료와 과학자들의 이야기, 청춘을 조국 근대화라는 시대의 소명에 바친 평범한 우리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가 눈앞에 펼쳐진다.
책에는 특정 인물을 미화하거나, 찬양하는 내용이 없다. 어느 개인의 행적이 부각되지도 않는다. 그저 가난을 떨쳐내기 위해 똘똘 뭉쳐 일하던 우리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와 오늘날 대한민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기술력이 어떻게 태동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농업과 공업, 조선과 철강 산업, 석유화학과 전기전자 산업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계 되어 있고, 어떻게 상호보완 속에서 발전해 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책 그대로 일선 학교에 경제 교과서 참고서로 채택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책을 덮고 현실을 보면 암울한 기분이 든다. 이제 조금 살기 좋아지기 시작하자 우리는 어느 순간 기술입국, 공학을 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에 빠지게 된다. 오늘날 청소년들 사이에 20대 태반이 백수라는 ‘이태백’,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 ‘88만원 세대’, ‘헬조선’ 등등의 자조적인 용어가 유행하고 있다. 이공계 기피는 사회적 문제가 된 지 오래다.
한국 교재로 사용해도 훌륭
가만 보면 이런 흐름은 1990년대 이후 테크노크라트를 배척하고 과학자와 기술자, 노동자를 우대하지 않는 사회 문화와 궤적을 같이 하고 있는 듯하다. 몸을 움직이는 육체노동을 천시하는 문화가 다시 사회 곳곳에 스며들면서, 자질과 소양, 능력을 갖춘 청소년들이 이공계 진출을 꺼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 모든 것이 지난 세월 우리가 지나치게 앞 만보고 달려온 반작용이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해본다. 이 책은 결국 대한민국을 기술 강국으로 일궈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을 읽은 청소년 누군가가 과학적인 마인드로 무장한 공학도가 되고, 인간미가 넘치는 21세기형 테크노크라트가 되어 대한민국의 희망찬 미래를 견인하기를 기대한다.
김소미 < 용화여고 교사(교육학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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