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철 기자 ] 1811년, 노팅엄에서 시작돼 영국 전역에 번진 러다이트(Luddite)운동. 당시 노동자들은 방적기가 자신들의 일자리를 앗아간다며 기계를 부수고 폭동을 일으켰다.
200여년이 지난 대한민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엔 뜻밖에도 ‘상위 5% 직업인’이 선봉에 섰다. 원격진료를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 얘기다. 기계 파괴는 아니지만 10년 넘게 완강하게 ‘신기술’을 거부하는 모습에 ‘21세기 러다이트’라는 착각이 든다.
정보통신기술(ICT) 발달로 의사와 환자가 얼굴을 맞대지 않고도 진료를 하는 원격진료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미국이 1997년 허용한 것을 시작으로 일본 호주 스웨덴 등 대다수 선진국은 이미 도입을 끝냈다. 의료 수준이 처진다는 평가를 받는 중국마저도 2013년 원격의료를 시작했다.
의협의 10년 원격진료 반대
국내에선 논의가 제자리걸음이다. 오진 위험성, 의료의 질 저하, 동네병원 붕괴 등을 이유로 의사단체들이 반대해 입법화가 번번이 무산됐다. 세계 최고 의료 수준과 정보기술(IT)을 갖추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길어지고 있다. 우리 기술로 외국 환자는 혜택을 보지만 국내 환자는 소외되는 ‘역차별’도 일어난다.
서울대병원과 합작한 헬스커넥트가 최근 중국에서 시작한 ICT 기반 당뇨관리 솔루션 사업이 대표적이다. 이 솔루션은 처방, 혈당 체크, 응급 발생 시 조치 등을 한꺼번에 해결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국내 병원이 이런 서비스를 했다가는 불법의료 행위로 간주돼 최악의 경우 문을 닫아야 한다.
의사협회가 내세우는 원격진료 반대 이유는 대다수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 국민 편익보다는 ‘자기 밥통’을 지키기 위한 논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의사협회가 주장하는 오진 가능성, 의료 질 저하 등의 부작용은 원격진료뿐 아니라 일반 의료 현장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원격진료가 허용되면 환자가 대형병원에 쏠려 동네병원은 몰락할 것이라는 주장도 주객이 뒤바뀐 것이다. 정작 의료 서비스의 주인공인 환자들은 안중에도 없다. 경쟁력이 떨어져 도태되든, 변화를 따라잡아 새로운 기회를 잡든, 그것은 오로지 병원의 몫이다.
환자 안중에 없는 소모적 논쟁
논쟁의 공수(攻守)가 뒤바뀐 것도 일종의 ‘코미디’다. 신기술을 접목해 시장(진료의 폭)을 넓히려는 것이 이익집단의 속성이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정부는 밀어붙이고 의사단체는 불가를 외친다. 환자 편의를 먼저 고려하는 선진국 의사들이 잠재적인 원격진료 강국인 한국이 아직도 시작하지 못한 이유를 묻는다면 답변이 궁색할 따름이다.
세계는 원격진료와 IT, 의료서비스를 통합한 모마일 헬스시대에 이미 들어섰다. 국내 스마트 헬스케어시장은 2020년 14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세계 시장 규모는 이보다 20~30배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기나긴 소모적인 논쟁 탓에 한국 의료산업은 세계 의료트렌드를 따라잡기에도 벅차다. 그런데도 의사단체들이 계속 반대를 외친다면 IT와 융합한 첨단의료 경쟁의 낙오자가 될 뿐이다. 그 피해가 의사뿐만 아니라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김태철 중소기업부장 synerg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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