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년간 자주 등장하던 고객·미래 등 키워드 밀어내
중국 성장둔화·유가 급락 등 연초부터 시작된 긴장감 반영
"올해 어렵고 변화 절실한 해"
[ 김현석 기자 ]
2016년 10대 그룹 총수들의 신년사(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은 삼성 제외)에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성장’과 ‘경쟁력 강화’다. 서른 번 이상 등장한다. 한 명당 평균 세 번 이상 썼다는 얘기다. 그 다음으로는 ‘변화’ ‘구조’ ‘경영환경’이 뒤를 이었다.
특이한 건 ‘구조’란 말이다. 작년부터 재계를 휩쓸고 있는 구조개혁, 구조조정 등은 지난 몇 년간 신년사에 자주 등장하진 않았다. 이들 용어는 ‘고객’ ‘미래’ ‘가치’ 등 그동안 많이 등장한 키워드를 밀어내고 올해 가장 많이 눈에 띄었다. 키워드에 따른 메시지를 요약하면 ‘올해 어려운 경영환경이 계속될 테니 구조적 변화를 통해 경쟁력을 키워 성장하자’는 얘기다.
이를 대변하는 말이 구본무 LG그룹 회장 신년사에 나온다. 구 회장은 “자칫 안일하게 대처한다 ?살아남기조차 어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만큼 올해는 어렵고 변화가 절실한 해라는 게 재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실제 지난해 말 미국 중앙은행(FRB)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촉발된 불안감은 새해 첫주부터 시작된 중국의 성장 둔화와 급격한 위안화 절하, 원유가 폭락, 글로벌 주식시장 급락 등으로 고조되고 있다.
재계 수장들이 내놓은 신년사에서는 이런 대외적 환경 악화와 가계 부채 증가, 소비 심리 위축 등 국내 시장의 불확실성이 한목소리로 거론됐다. 또 불투명한 환경을 이겨내기 위해선 적극적인 자세와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미래 경쟁력 확보’, 구 회장은 ‘혁신’,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패기’를 각각 올해의 경영 화두로 제시했다.
정 회장은 2016년 시무식에서 “불확실성이 높아진 경영 환경을 극복하고 그룹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선 미래 경쟁력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구 회장은 “전자 화학 등 우리 주력 산업이 신흥국 도전을 받으면서 산업 구조상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산업 구조 변화와 경쟁 양상을 정확히 읽고 근본적으로, 그리고 선제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패기란 일과 싸워 이기는 기질을 뜻한다”며 “나를 비롯한 최고경영자(CEO)들이 앞장설 테니 패기를 갖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나가자”고 당부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별도의 신년사를 내지 않고 계열사를 찾아 사업 목표를 들었다. 또 전무급 이상 임원들과 식사를 함께하며 솔직한 의견을 교환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지금까지는 재무구조 개선에 초점을 맞춰 구조조정을 했다면, 올해는 숨어 있는 잠재 부실까지 제거하는 철저한 구조조정을 단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미래 기술, 산업 트렌드, 경영환경 변화 등을 면밀히 분석해 GS가 나아갈 방향을 적기에 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올 경영 화두로 ‘행복’을 제시하며 “조직 구성원 개개인이 스스로 행복을 찾는 한편 그 기운이 자연스럽게 고객과 이웃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더 이상 매출 1위, 생산량 1위가 목표가 돼선 안 된다”며 “품질력 1위, 수익성 1위, 고객가치 1위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강조했다. 박용만 두산 회장은 “상대적으로 호경기를 맞은 미국 등 선진국과 고성장이 예상되는 인도 등 신흥국을 상대로 적극적인 기업 활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손경식 CJ 회장은 “지속적인 성장과 미래 비전 달성을 위해 글로벌 성과 창출이 필수적”이라며 “계열사별로 주력 사업을 강화해 글로벌 1등 브랜드를 육성하고, 글로벌 역량을 갖춘 인재 확보 및 육성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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