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반니 프라체토 지음 / 이현주 옮김 / 프런티어 / 376쪽 / 1만5000원
[ 김보영 기자 ]
약속 시간에 늦었는데 길이 꽉 막혀 울화통이 터진다. 수년 전 헤어진 애인이 문득문득 떠올라 괴롭다.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잠도 못 이룰 정도로 걱정이 밀려든다. 일상에서 머리로는 냉정해지려고 해도 감정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사례들이다.
감정은 통제 범위 밖에 있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사람들은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기 위해 종교를 찾거나 철학·심리학 서적을 읽곤 한다. 이탈리아 출신 신경과학자 조반니 프라체토도 감정에 대해 학생 시절부터 관심이 많았다. 그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은 최근 급격히 발달하고 있는 신경과학을 통해서다. 《감정의 재발견》은 프라체토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분노, 죄책감, 불안, 슬픔, 공감, 기쁨, 사랑 등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을 신경과학의 최신 연구 결과를 담아 들여다본 인문심리서다.
해부학적으로 뇌의 각 부위와 특정 감정이 연결돼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이마와 눈 바로 뒤에 있는 전전두엽 피질의 병변은 공격성·충동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대 중반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시오와 미국 아이오와 의대 연구팀의 실험 결과 전전두엽 피질이 손상된 환자는 두려움을 느끼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위험한 선택을 할 때의 피부전도 반응(SCR)을 검사하자 일반인은 긴장을 느껴 땀을 흘린 반면 환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불안과 관련한 뇌의 주요 부위는 편도체다. 뇌의 맨 아랫부분에 있는 이 부위에 병변이 있는 환자는 다른 사람들의 얼굴에 나타난 두려움의 표정을 알아채지 못했다. 두려움을 일으키는 소리에 대한 감정적 기억처럼 감정을 일으키는 요인이 저장되는 곳도 이 편도체다. 위험 신호는 편도체에서 뇌간으로 전달되고, 뇌간은 불안 반응을 활성화한다.
무대 위 배우들은 놀라울 정도로 현실감 있는 연기를 선보인다. 모방은 공감 능력과 관련이 있다. ‘거울 뉴런’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고 내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며, 감정의 전염과도 관련이 있다. 거울 기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대뇌 피질 부위 두 곳은 하전두이랑(IFG) 주변과 아래마루소엽(IPL)이다. IFG의 활성화 정도는 행복과 분노, 역겨움과 슬픔 등 모든 감정에 보이는 공감 수준과 상관관계가 있다.
해부학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유전자 수준에서 감정을 이해하는 연구도 다수 이뤄졌다. 모노아민 산화효소(MAOA)와 관련한 연구가 대표적이다. MAOA 유전자가 제거된 설치류는 분노와 관련한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수치에 이상을 보였다. MAOA 유전자에 ‘폭력 유전자’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다.
저자는 ‘유전자 결정론’ 등 선천적 요인에만 의존해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뇌에 바소프레신 수용체가 거의 없는 남자는 수용체가 더 많은 남자보다 결혼을 못 하거나 남녀관계에서 위기를 더 많이 경험할 가능성이 두 배 높았다. 하지만 상관관계에 불과할 뿐이다. 대부분의 감정 성향은 환경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어서다. 유년 시절 부모의 영향도 지대하다.
뇌의 가소성도 무시할 수 없다. 습관을 통해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면 뇌는 쉽게 적응한다. 신경과학은 수치와 측정 결과를 통해 감정을 설명하지만 과학의 언어로 대체할 수 없는 사적인 해석도 있다. 프라체토는 “인간은 과학적이면서 감정적일 수 있는 존재”임을 숙지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아 나가라고 조언한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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