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투자가 10년물 국채 선물, 300억원 매수하며 하락 주도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 겹쳐…채권 등 안전자산 '쏠림' 가속화
주식 연일 내다파는 외국인, 채권 시장에선 5개월째 순매수
[ 이태호/하헌형/이상열 기자 ]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21일 사상 처음으로 연 1%대로 떨어졌다. 중국 성장 둔화와 국제 유가 급락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한 가운데 국내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겹치면서 안전자산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날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날보다 0.007%포인트 하락(채권 가격 상승)한 연 1.995%에 마감했다. 전날 기록한 사상 최저치(연 2.002%)를 하루 만에 갈아치웠다.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이날 선물시장에서 10년 만기 국채 선물 2336계약(2336억원어치)을 순매수하면서 금리 하락을 주도했다. 5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0.01%포인트 떨어진 연 1.75%,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0.006%포인트 내린 연 1.611%에 장을 마쳤다.
장기 채권인 10년짜리 국고채 금리가 연 1%대로 떨어진 것은 그만큼 한국의 장기 경제 전망을 어둡게 보는 투자자가 많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통상 만기가 긴 채권일수록 단기 악재보다는 경기 전망 등 장기 요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정원석 LS자산운용 채권운용본부장은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의 연 1%대 진입은 한국 경제가 ‘저성장 저물가’에 점점 깊이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생명보험회사 채권운용역도 “채권 투자자들이 장기 국채를 적극적으로 매수하는 데는 올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3%를 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깔려 있다”며 “경제지표와 금융시장, 투자심리 모두 국내 경기의 부정적인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14일 올해 GDP 증가율 전망치를 기존 3.2%에서 3%로 하향 조정했다. 경기침체가 길어지면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돈을 푸는 양적 완화 정책을 쓸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한국도 일본이나 대만과 비슷한 상황을 맞을 가능성이 높아 저성장 고착화에 준비하고 대응을 서둘러야 한다”며 “정부와 한국은행의 정책적인 대응만으로는 저성장 추세를 극복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장기 국채 금리의 하락세가 지속되면 당장 보험사 등 금융회사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채권 투자 수익률이 보험 가입자에게 약속한 수익률(공시이율)에 미치지 못하는 ‘역(逆)마진’ 양상이 더욱 심해지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은 보험료 수입을 주로 장기 채권에 투자하고 있다. 반대로 증권사들은 일시적인 실적 개선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 증권사들은 금융 상품 운용을 위해 많게는 10조원 안팎의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채권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금리가 하락하면 그만큼 평가이익이 커진다.
한국 국채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안전자산으로 분류된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중국과 일본보다 높은 ‘Aa2’로 평가하고 있다. 21개 신용등급 중 세 번째로 높다. 원화 약세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들의 국내 채권 매수가 지속되는 주요 배경이다.
신동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외국인이 국내 주식시장에선 3개월 연속 순매도를 지속하고 있지만 채권시장에선 작년 7월을 제외하고 최근 11개월간 순매수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약해지면 국내 국채 금리도 반등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이태호/하헌형/이상열 기자 t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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