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은 기자 ]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미식축구팀 포티나이너스(49ers)에는 전설적인 코치가 있다. 1980년대 전성기를 이끈 빌 월시(1931~2007)다. 성적이 형편없었던 이 팀에 1979년 영입된 월시는 불과 두 시즌 뒤인 1981년 슈퍼볼 우승을 이끌어냈다. 1984년과 1988년에도 우승했다.
승리를 이끌어 칭송받는 스포츠 리더는 많다. 월시가 독특한 점은 그가 단순히 한 팀만 잘 이끈 것이 아니고 제2, 제3의 무수한 ‘월시들’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른바 ‘월시 사단’이다. 한때 미식축구리그(NFL)의 각 팀을 이끄는 감독 32명 중 월시가 직접 지도했거나 그의 제자가 길러낸 사람들이 20명에 달하기도 했다. 미국 스포츠계에 지도자 계보라는 뜻의 ‘코칭 트리(coaching tree)’ 용어를 널리 쓰이게 한 인물이다.
오라클 최고경영자(CEO)였던 래리 엘리슨(현 최고기술책임자)도 이런 리더십으로 유명하다. 1994년부터 2004년까지 10년간 그가 오라클에서 키워서 다른 기업의 CEO나 이사회 의장, 최고운영책임자(COO)로 발탁되게 한 인물은 9명에 이른다.
시드니 핀켈스타인 미국 다트머스대 터크경영대학원 교수는 최근 발행된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기고한 글에서 이처럼 리더를 키우는 리더를 ‘슈퍼보스(super boss)’라고 통칭했다. 그는 “뛰어난 리더들은 단순히 조직을 구성하는 것만 하는 게 아니라 미래 리더를 찾아내고, 훈련하고, 발전시킨다”며 “그들은 슈퍼스타가 아니라 슈퍼보스의 영역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핀켈스타인 교수에 따르면 슈퍼보스가 인재를 키우는 과정에는 공통점이 있다.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다. “슈퍼보스는 인재는 어때야 한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개방적으로 사람을 대한다”고 그는 전했다.
예컨대 유명 패션 브랜드 랄프 로렌의 창업자 랄프 로렌 전 회장은 패션쇼에 섰던 여성 모델을 여성복 디자인 책임자로 깜짝 발탁한 적 있다. ‘그 모델이 누구보다 옷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나이 따지고, 학벌 따지고, 경력 따져서는 할 수 없는 인사였다.
자신보다 우수한 사람을 찾아서 거느리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것도 슈퍼보스의 특징이다. 부동산 개발회사 라살파트너스와 시큐리티캐피털 등을 운영하며 여러 CEO를 배출한 윌리엄 샌더스는 자신보다 ‘4배 더 똑똑한’ 사람들을 많이 영입한 것을 두고 다른 이들에게 으스대곤 했다. 새터데이나이트라이브(SNL)의 장수 프로듀서였던 론 마이클은 “같은 방에 있는 동료를 둘러보고 ‘이 사람들은 정말 놀랍다’고 생각한다면 제대로 된 방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
슈퍼보스는 또 거느린 사람에게 높은 목표를 제시하고 책임을 맡긴다. 똑똑하고 야심 차고 적응력이 뛰어난 사람을 선택해 비전을 제시하면 그 일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TBWA그룹을 이끄는 톰 캐럴은 자신의 상사였던 제이 치아트에 대해 “일상적인 일이 시시하게 느껴질 만한 일을 사람들에게 맡겼다”고 회고했다. 힘들지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뜻이다.
일단 슈퍼보스로 자리매김하면 사람이 사람을 부른다. “새로 인재를 모집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인재가 제 발로 찾아오는 경지에 이른다”고 핀켈스타인 교수는 설명했다. 모든 CEO가 원하는 경지일 것이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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