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지침 따른 해고도 분쟁 초래…구속력 있는 법령화 필요"
노동계 "정부가 대타협 합의 깬 것…양대 지침은 노동 개악"
[ 강현우/이현동/백승현 기자 ] “수년간 인사평가 자료를 쌓아두지 않으면 성과가 아무리 부진해도 회사에서 내보낼 수 없게 된 꼴입니다. 인사관리는커녕 하루하루 생존 경쟁 중인 중소기업엔 있으나 마나 한 지침입니다.”
고용노동부가 22일 내놓은 ‘일반해고(공정인사) 지침’과 ‘취업규칙 지침’에 대해 전북 군산지역의 한 자동차부품사 A사장은 이렇게 하소연했다. 노동조합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금속노조에 소속돼 있는 이 회사는 일보다는 노동운동에 관심이 많은 일부 근로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A사장은 “정부가 내놓은 지침은 현재 제대로 일하지 않는 근로자들에게 몇 년간 더 회사에서 버틸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셈”이라고 지적했다. A사장의 주장처럼 기업 경영 현장에선 노동시장 개혁을 위해 정부가 내놓은 2대 지침이 노동시장 유연성을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고용부의 공정인사 지침은 해고 소송에 대한 법원 판결들을 정리하고 유형화한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경총은 “법원이 구체적인 사건에서 내린 판단들을 일반적인 기준으로 제시했기 때문에 기업 현장에선 인사관리 기준과 절차에 새로운 규제가 더 늘어나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예컨대 고용부 지침은 인사평가제도 설계 항목에서 ‘인사평가 항목을 구체적으로 세분화하고 평가 단계를 다단계로 구성할 것’이라는 원칙을 제시한 뒤 S·A·B·C·D 등 5단계로 구분한 제도가 합리적이라는 판례를 추가했다. 경총은 “이런 사례 때문에 3~4단계로 구성된 인사평가 제도는 불합리하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인사평가 기준과 절차가 복잡해 중소기업에서 실제 현장에 지침을 적용할 때 혼란이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소·중견기업은 자금난과 전문인력 부족 등으로 인사관리 법규와 시스템을 제대로 정비하지 못한 기업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안산 반월공단에 있는 중견기업의 B대표는 “그동안 정당한 절차를 밟아도 저성과자를 내보내는 데 6개월 정도면 가능했다”며 “객관적으로 인사평가를 해도 2~3년 평가가 누적돼야 하고, 재배치·재교육 기간을 감안하면 4~5년 뒤에나 해고가 가능하다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처럼 고용 유연성 확보가 힘들어진다면 신입직원 채용도 보수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기업들은 또 정부 지침으로 인해 해고에 따른 분쟁이 더 늘어날 것을 우려했다. 지침은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기업이 정부 지침에 따라 저성과자를 해고하거나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더라도 근로자가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해고와 취업규칙 변경 요건을 정부 지침이 아닌 법령으로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경총은 취업규칙 지침이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면 기업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임금피크제 도입을 근로기준법상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불이익 변경’으로 단정한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 양대 지침을 확정한다고 한 대타협 합의를 전혀 지킬 뜻이 없었음이 명백히 드러났다”며 “양대 지침은 ‘쉬운 해고’와 노동개악에 다름아니다”고 반발했다.
강현우/이현동/백승현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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