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못 떠요?"…꽉찬 대합실 2만명 '발동동'

입력 2016-01-24 17:30  

현장리포트
제주=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

제주 32년 만의 '대폭설'…12시간 제주공항 고립기

전편 결항…공항은 아수라장

비행기 탔다가 4~5시간 대기…대합실로 가보니 사람들 뒤엉켜
고함 지르며 밀치고 '난리통'

눈보라·강풍에 공항 인근 마비

택시는커녕 시내버스도 '감감'…탈출 시도하다 강추위에 '덜덜'
체념한 승객은 대합실서 새우잠



[ 임원기 기자 ] 마치 할리우드 재난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상황은 그만큼 ‘비현실적’이었다. 180여편의 항공기가 결항하면서 승객 2만여명이 쏟아져나와 공항 대합실은 북새통을 이뤘다. 2~3m 앞도 보이지 않는 눈보라를 뚫고 공항을 빠져나가겠다며 ‘만원 버스’에 오르기 위해 고함을 지르고 싸우는 사람들…. 32년 만의 기록적 폭설로 마비된 지난 23일 제주공항은 한마디로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1박2일의 업무 출장으로 22일 제주도에 온 기자는 23일 제주공항에서 12시간 가까이 고립돼 있었다. 이날 오전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오른 항공기는 폭설로 이륙하지 못했다. 활주로에 대기하던 항공기 기내에서 4시간 이상, 공항 대합실에서 7시간 이상 발이 묶여 있었다.

아침부터 조짐은 안 좋았다. 일행보다 앞서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23일 오전 10시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숙소를 출발할 때 이미 눈발은 굵어지고 있었다. “제주는 눈이 와도 금세 녹아요.” 눈 때문에 걱정하자 택시기사는 기자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공항까지 자동차로 30분이면 갈 거리였지만 1시간30분 이상이 걸렸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달려가 체크인을 했다. 시계는 낮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전 11시45분 출발 예정이던 비행기는 폭설로 이륙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후 1시10분 탑승했지만 비행기는 꿈쩍도 못했다. 창밖을 보니 눈보라가 세찼다. “날개와 기체의 눈, 얼음을 제거한 뒤 이륙하도록 하겠습니다. 제주공항 제설장이 한 곳밖에 없어 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기장이 기내방송을 했다.

30분마다 승무원들의 설명이 이어졌지만 창 밖의 눈발은 더 거세지고, 강풍마저 불고 있었다. 오후 5시30분이 돼서야 운항 취소가 결정됐다. “다음 비행기가 언제 뜨나요?” 비행기 안은 다음 비행 시간과 숙박 등을 문의하려는 사람들의 고성과 전화통화로 아수라장이 됐다.


비행기에서 내려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러나 갈 방법이 막막했다. 공항 버스정류장은 발 디딜 틈조차 없이 사람들로 붐볐다. 낮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 20여대의 항공기가 이륙하지 못한 채 활주로에서 대기하다가 한꺼번에 4000여명의 승객을 공항 대합실로 쏟아냈기 때문이다. 항공편이 취소돼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도 1만5000여명에 달했다. 2만여명에 달하는 인파가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눈보라와 추위, 배고픔과 싸워야 했다.

공항버스를 포기하고 택시정류장으로 갔지만 이미 200여명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한 시간 넘게 줄을 서 있어도 한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어디선가 공항 직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택시 안 다닙니다!” 공항에서 임시 버스편을 마련해준다는 방송이 나오고 있었지만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몰랐다.

발길을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돌렸다. 36, 37, 38번 버스가 숙소 근처로 향하는 것이었다. 2시간을 기다렸지만 37번 버스 딱 한 대만 들어왔다. 간간이 다른 노선의 버스가 들어왔지만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수천명을 감당해내지 못했다. 버스가 한 대 올 때마다 여행가방을 든 수백명이 버스로 우르르 몰려가 버스 문에 매달렸다. 경찰이 질서 유지를 위해 고함을 지르고 호루라기를 불어도 소용없었다.

마지막 희망은 함께 출장 온 일행과의 전화통화였다. 그러나 휴대폰 배터리엔 이미 빨간불이 들어온 뒤였다. 공항 대합실 내 휴대폰 충전소에도 수백명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중국인 관광객들의 거친 항의 목소리도 들렸다. 상당수 승객은 공항 탈출을 포기하고 차가운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누웠다. 가까스로 휴대폰을 충전하고 일행 중 한 명과 통화하는 데 성공했다.

기자가 이미 귀경한 것으로 알고 있던 일행들은 택시를 구해 공항으로 보내줬다. 오전 10시 이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11시간이 지난 뒤였다. 1시간 뒤 기자를 데리러 온 택시가 공항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인파 사이로 공항을 빠져나온 시간은 오후 10시. 꼬박 12시@?악몽같았던 ‘제주공항 고립’이었다.

제주=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