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미국의 '질서 있는' 폭설 대응

입력 2016-01-25 17:42  

박수진 워싱턴 특파원 psj@hankyung.com


[ 박수진 기자 ] 미국 동부지역을 덮친 폭설이 24일(현지시간) 오후 그쳤다. 이번 폭설은 사흘간 12개주(州)에서 8500여만명을 옴짝달싹 못하게 한 94년 만에 최악의 폭설로 기록됐다. 일부 지역 적설량은 107㎝에 달했다. 최소 24명이 죽고, 경제적 피해액이 최대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번 폭설 때 인상적이었던 것은 위력과 피해 규모가 아니라 재해에 대처하는 당국과 시민들의 자세였다. 뮤리엘 바우저 워싱턴DC시장은 폭설이 예고되자 지난 21일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매일 두세 차례씩 시당국 책임자들을 대동하고 직접 브리핑을 했다.

그는 “비상식량을 확보하고 외출을 삼가달라”(21일), “비상로에 주차를 금지해 달라. 위반 차량은 견인하고 750달러의 벌금을 매기겠다”(22일), “눈이 그쳤으나 아직 나올 때가 아니다. 내일까지 휴교를 연장한다”(24일) 등 행동 지침을 세세하게 설명했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 등 다른 시장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경찰과 주정부 방위군, 자원봉사자까지 가능한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했음은 물론이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시민들을 안심시키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하는, 차분하고 질서 있는 대응이었다.

눈 치우기에 나선 시민들은 홀로 사는 노인이나 제설 작업이 힘든 장애인 가정을 먼저 찾아 도왔다. 버지니아주 랭리고 4학년에 재학 중인 헬렌 홉스 양(18)은 “노인들은 이런 눈을 치우기 힘드니 도와주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웃들이 눈을 치우며 차를 마시고, 음식을 나누는 훈훈한 풍경이 연출됐다.

최악의 폭설로 기록된 1922년엔 붕괴사고 등으로 100여명이 사망했다. 이번엔 24명이 죽었지만 대부분 눈 치우기 중 심장마비, 운전 중 눈길 미끄러짐 등 부주의로 인한 사고가 많았다. 과거 재난을 교훈 삼은 당국의 매뉴얼 대응이 시민들을 안심시키고, 사망자를 줄였다는 분석이다. 제주에서 폭설에 발이 묶인 약 9만명의 관광객들이 상황 설명도 제대로 못 듣고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는 소식이 더욱 안타깝게 들리는 이유다.

박수진 워싱턴 특파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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