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공항에 갇혔던 요우커 "사흘간 끔찍한 난민 체험"

입력 2016-01-26 17:59  

발 묶인 외국인 6539명…"숙소·끼니 해결 못해 피난민 신세"

자유여행 요우커들 더 큰 고통
"찜질방은 단체여행객 점령…우린 최소한 배려도 못받아"



[ 최병일 / 고재연 기자 ] “공항에 몇만명이 남아 있는데 숙박도 해결되지 않고 한국의 큰 호텔들은 바가지를 씌우고 있다. 비행기 지연 안내도 안 해준다. 공항에서 나오는 방송은 모두 한국어이고 심지어 영어방송도 나오지 않았다. 제주를 두 번 다시 찾지 않겠다.”

32년 만의 기록적인 폭설로 제주공항에 갇혔던 한 중국인 관광객(요우커)은 지난 25일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웨이보(微博)에 이런 글을 올렸다. 뜻밖의 재난에 직면해 흥분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올린 글임을 고려하더라도 요우커들이 이번 사태로 얼마나 불편하고 불안했을지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번 결항 사태로 피해를 본 국제선 승객은 중국인 5490명, 태국인 480명, 홍콩인 322명, 일본인 71명 등 6539명으로 대다수가 요우커였다. 이들은 이번 폭설로 공항에 갇혔던 사흘 동안 끔찍한 ‘난민체험’을 해야 했다.

그나마 패키지 여행객은 여행사가 임시 숙소를 구해줘 불편이 덜했지만 전체 외국인 관광객의 절반이 넘는 개별자유여행객은 이번 폭설의 가장 큰 희생자였다. 대부분 언어도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숙소와 교통편을 구하지 못해 2중 3중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공항이 워낙 혼잡해 외국어 안내도 잘 들리지 않았고, 이마저 비행기 결항에 관한 단편적인 안내에 불과했다. 한 요우커는 “담요를 구하지 못해 화장실 근처에 쭈그려 앉아 한뎃잠을 자야 했다”고 말했다.

한국인 여행객조차 갈 곳을 못 찾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인 관광객(요우커) 개별자유여행객들은 최소한의 배려도 받지 못했다고 성토했다. 외국인 관광객의 대부분을 차지한 요우커들을 위한 중국어 안내 방송은 사흘 내내 한 번도 듣지 못했다는 것. 말이 통하지 않아 단체여행을 온 중국인 담당 가이드를 붙잡고 물어봐도 자기 손님을 챙기느라 바빠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공항 편의점의 빵과 음료수는 일찌감치 동났다. 시내까지 나가야 음식을 살 수 있었으나 말이 통하지 않아 거의 이틀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는 요우커까지 있었다.

결항이 길어지면서 공항은 생활 쓰레기로 넘쳐났다. 요우커들은 당시 상황을 “전쟁이 터져 피난을 온 것 같다”고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기도 했다.

요우커 단체여행객들이 공항 근처 찜질방을 점령해 개별여행객은 다시 공항으로 돌아가는 경우까지 있었다.

일부 요우커는 11시간이나 공항에서 기다렸는데도 숙소를 배정받지 못하자 항공사 창구를 집단으로 점거하고 거칠게 항의했다. 한 요우커는 퓽美?집어던지는 등 난동을 부리기까지 했다.

관광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비록 천재지변이라 할지라도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나 지원이 적절하게 이뤄지지 않은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제주를 찾는 외국인 중 58%에 달하는 개별자유여행객에 대한 기본적인 통역 서비스조차 이뤄지지 않은 점은 제주 관광의 취약점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관광업계에서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철저한 준비와 제도 정비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관광제주’의 위상은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관광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상 초유의 폭설 기간 동안 제주도청과 유관 관광기관과 업체가 밤잠을 못자고 공항에서 대기하며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며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재난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고민해 관광서비스 강화에 힘써야할 필요성이 제기됐다"고 말했다.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고재연 기자 skyc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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