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낮추겠다"던 정부 시장개입 실패로…혈세 150억원 낭비
[ 임원기 기자 ] 과거 고유가 시대에 기름값 부담을 낮추겠다며 정부 주도로 도입된 알뜰주유소가 초(超)저유가 시대를 맞아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유가 급락으로 일반 주유소의 판매가격이 알뜰주유소와 별반 차이가 없어진 게 결정타가 됐다. 싼값이라는 유일한 이점이 사라지자 문을 닫거나 일반 주유소로 전환하는 알뜰주유소 업체가 속출하고 있다. 고유가 시대 시장을 통제하기 위해 도입한 정책이 저유가 시대를 맞아 골칫덩이가 된 것이다.
알뜰주유소 ‘포기’ 급증
27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2011년 말 도입된 알뜰주유소는 2012년 844개, 2013년 1031개로 늘었지만 2014년부터 정체를 보이다 올 들어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날 현재 전국 알뜰주유소 수는 1143개로 작년 말보다 2개가 줄었다. 새로 문을 여는 업체보다 문 닫는 업체가 더 많다는 얘기다.
석유공사가 직접 관리하는 자영알뜰주유소는 신규 업체 수가 매년 급감하고 있다. 폐업을 하거나 일반 주유소로 전환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2012년 신규 알뜰주유소 등록업체는 278개에 달했고 2013년에는 156개가 신규 알뜰주유소로 등록했다. 하지만 2014년에는 89개, 지난해에는 54개로 감소했다. 알뜰주유소 해지 업체 수는 2013년 26개를 기록했고 지난해에도 43개 업체가 알뜰주유소를 포기했다.
유가 급락에 가격경쟁력 ‘실종’
가장 큰 이유는 유가 하락과 고정적인 유류세 때문이다. 유가가 급락하면 주유소들이 정유사들로부터 받는 석유공급가가 낮아지지만 L당 유류세는 거의 변화가 없다. 유류세는 L당 고정액이 부과되는 종량세다. 유류세가 고정돼 있으니 가격 경쟁을 하려면 마진폭을 줄여야 하는데 이게 한계에 와 있다는 게 정유업계 설명이다. 최근 휘발유값 하락으로 L당 주유소 마진은 75.4원으로 역대 최저 수준이다. 휘발유값이 L당 2000원에 육박했을 때와 비교해 40% 가까이 하락했다.
결국 알뜰주유소가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정유사로부터 공급받는 가격에서 일반 주유소와 차이를 벌리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유가 급락으로 이마저도 어렵게 됐다. 2011년 말 정부가 알뜰주유소 제도를 처음 도입했을 때는 석유공사, 농협 등이 정유사로부터 대량 구매해 단가를 낮추는 방식을 취했다. 이런 방식 덕택에 알뜰주유소가 공급받는 석유 단가는 한때 일반 주유소보다 L당 50원 이상 싸기도 했다.
하지만 유가 급락에 경기 불황이 겹치면서 이런 방식도 별 소용이 없어졌다. 물량이 넘친 정유사들이 싼값에 석유를 풀면서 석유공사의 알뜰주유소 공급가와 차이가 줄어들었다. 2012년 3월 L당 42.1원에 달했던 일반 주유소(현대오일뱅크 기준)와 알뜰주유소의 휘발유 판매가격 차이는 2014년 말 24.7원으로 좁혀졌다. 이달 둘째주에는 18.4원으로 더 축소됐다.
시장개입의 씁쓸한 결말
정부가 알뜰주유소를 도입한 것은 휘발유값이 L당 2000원을 웃돌던 고유가 시대에 소비자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분에서였다.
판매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춘 주유소가 시장에 나오면 경쟁을 촉발해 주유소 휘발유값이 떨어질 것으로 봤다. 이를 위해 정부는 알뜰주유소로 전환하는 일반 주유소에 대해 시설개선비용의 90%, 최대 3000만원을 지원했다. 재산세, 법인세 등 감면 혜택도 줬다. 제도 도입 후 지난해 말까지 시설지원자금만 150억원이 나갔다.
하지만 유가 하락에 알뜰주유소의 장점은 사라져버렸다. 국민 세금을 투입해 간판만 바꿨을 뿐 일반 주유소와 다를 게 없는 주유소를 내는 데 헛심을 쓴 것이란 지적이다. 주유소업계 관계자는 “알뜰주유소의 실효성은 사실상 없어졌다”며 “주유소 시장의 공정 경쟁을 훼손하고 주유소 사업자 간 갈등만 키웠다”고 지적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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