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유가에 대한 해석
과거엔 오르면 경제 부담 우려…이젠 경기 호조 신호로 해석
과도한 '저유가 공포'
"에너지업체·산유국 부도로 세계 경제 침체 올 것" 걱정
[ 박종서/임근호 기자 ] 올 들어 미국 증시와 국제 유가가 거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국제 유가가 오르면 미국 주가가 오르고, 유가가 내리면 미국 주가도 내리는 패턴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CNN머니가 26일(현지시간) “요즘 주가를 예상하는 일이 아주 쉬워졌다”고 진단했을 정도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올 들어 미국 주가와 유가의 상관계수는 0.97에 달한다. 상관계수가 1이면 완벽히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얘기다. 통상 주가와 유가는 뚜렷한 상관관계가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왜 요즘은 이렇게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일까.
주가·유가 그래프 같이 움직여
브렌트유 2월 인도분이 전날보다 7.1% 급락한 지난 15일 미국 뉴욕증시의 S&P500지수도 2.2% 급락했다. 반면 26일 브렌트유가 3.8% 급등했을 때 S&P500도 1.39% 올랐다. 유가의 등락폭이 가장 컸던 이 두 날을 포함해 올 들어 원유시장과 미국 증시가 함께 열린 17영업일 중 나흘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가와 주가가 함께 오르거나 떨어졌다.
WSJ에 따르면 브렌트유와 S&P500지수는 미국 부실채권 거품이 꺼지면서 경제가 급속도로 악화됐던 1990년 이후 26년 만에 처음으로 가장 밀접한 연관성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주가와 유가의 상관관계는 크지 않았다. 주가는 기본적으로 기업 수익성과 성장성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유가가 떨어지면 소비가 늘어나 주가 상승의 원동력이 되는 사례도 많았다. 미국 경제에서 에너지업계가 차지하는 비율도 3% 정도에 그친다.
경기침체 공포에 이성적 판단 마비
WSJ가 분석한 동조화의 주된 원인은 시장의 공포다. WSJ는 “주식과 원유시장 참여자 사이에 중국의 경제 성장세 둔화 등으로 세계 경제가 침체될 수 있다는 공포가 만연하면서 이성적인 판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네덜란드에 있는 NN인베스트먼트의 발렌틴 판나우엔하위전 자산전략부문 대표는 “공포 때문에 주식 투자자들이 저유가의 긍정적 측면과 기업 펀더멘털(실적 대비 주가수준) 등을 분석할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한 채 오직 유가에만 휩쓸리는 장세가 연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주가와 유가의 상관계수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에도 0.8까지 치솟았다.
CNN머니는 구체적으로 공포의 배경을 분석했다. 가장 큰 이유는 주식 투자자들이 유가 하락을 소비 수요 감소 때문이라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산유국들이 감산을 반대하고 이란이 하루 100만배럴 증산에 나서는 등 공급과잉 여파가 큰 데도 주식 투자자들은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위축에 더 무게를 둔다는 것이다. 유가가 떨어지면 에너지 기업 실적이 나빠지고, 텍사스와 노스다코다주(州) 등 원유 생산 지역의 경제가 악화할 것이란 우려도 더해졌다. 에너지 기업 부실이 은행권 부실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산유국 국부펀드들이 올 들어 750억달러에 달하는 주식을 팔아치워 재정에 투입했다는 사실 또한 공포를 부추겼다.
CNN머니는 “러시아 브라질 등 주요 산유국의 경제위기설도 악재”라며 “미국 중앙은행(Fed)의 추가 금리 인상 일정이 불확실해진 것 등을 포함해 투자자들이 모든 사안을 나쁘게 해석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하지만 유가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 주가와 유가의 동조화 현상이 깨질 것으로 전망했다. 에드 야데니 야데니투자자문리서치회사 대표는 “유가의 변동성이 줄면 저유가가 결국 미국 경제에 좋은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주가도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감산 가능성에 유가 반등
국제 유가는 26일 원유 생산국의 감산합의 가능성에 강세를 보였다. 3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원유(WTI)는 전날보다 1.11달러(3.7%) 오른 배럴당 31.45달러에 마감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OPEC 회원국뿐 아니라 비회원국에도 원유 감산을 촉구한 가운데 감산 결정을 주도할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입장이 이전보다 부드러워졌다는 주장이 나오면서다. 아델 압둘 마흐디 이라크 석유장관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과잉 공급을 해소하기 위한 합의에 유동적이라는 신호가 보인다”고 전했다.
박종서/임근호 기자 cosm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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