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전부였던 곳, 곧 재개발로 사라질 운명
체감 영하 20도 칼바람 속 밥술 뜨며
시장상인들 오늘도 어김없이 그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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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서울시 중구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앞 보도에는 매일 이른 새벽 어시장이 열린립니다. 보통 새벽 3시부터 약 아침 9시까지 5~6시간 동안 좌판을 깝니다.
출근 시간인 오전 9시가 지나면 주차단속 등이 시작되기 때문에 대부분 장사를 접고 보도를 비웁니다. 그래서 이 일대를 자주 지나는 서울시민들도 여기에 새벽 시간에만 문을 여는 '중림동 수산시장'의 존재를 잘 알지 못합니다. 주변 일대 재개발로 조만간 완전히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는 사실을 아는 시민은 더 없습니다.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서울의 대표 난전의 마지막 후손격인 시장이 말입니다.
'뉴스래빗'은 지난 수십년간 매일 새벽 보도 위에 난전을 펼쳐온 상인들의 삶과 그 이야기를 '화양 ??#39;로 기록합니다. 유례없는 초강력 한파로 체감온도가 20도 아래로 곤두박칠쳤던 그 추운 새벽에도 상인들은 어김없이 오랜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 [화양연화] 영상에서 중림시장의 애환을 바로 만나보세요.
# 이 취재 기사는 중림시장 상인들의 인생과 기억을 토대로 재구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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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반, 서울 도시가 잠든 시간. 100미터 안팎 작은 어(漁)시장 골목엔 반갑지 않은 동장군의 행패가 한창이었다.
"어우~추워!" 지난 20일 새벽 4시, 체감온도는 영하 20도까지 떨어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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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여러 번 겪은 추위지만 적응하기 힘든 건 마찬가지. 이럴 땐 모닥불이 제 격. 상인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여기저기 모닥불을 피운다. 곳곳에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가 요란하다.
널빤지나 지푸라기. 온기(溫氣)를 모을 수 있는 건 죄다 구멍 뚫린 양철통에 모아 넣는다.
모닥불 주변으로 어느새 주변 상인들이 모여든다. 지금은 둘 또는 셋이 고작이지만 예전엔 수십 명 모였던 시장이다.
그러나 이젠 머지않아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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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들은 모닥불을 쬐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18세기 후반. 칠패시장(중림동 수산시장의 전신)은 이현(梨峴),종가(鐘街:종로)와 함께 서울 3대 난전(亂廛)으로이름 날렸다. ‘도깨비’ 또는 ‘도떼기시장’이라 불리며 중림동 수산시장엔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상인들은 새벽에 나와 아침에 퇴근하는 불규칙한 생활에 지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생선들 덕에 힘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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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상인은 "내가 힘들어도 자식 잘 될 것이란 생각에 행복했으니까"라고 회상했다. 일주일에 하루 쉬며 번 돈으로 아이 셋 대학까지 보냈다. 그게 부모의 ‘의무’라고 생각했고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금은 시장이 완전히 죽었어"라는 상인의 무덤덤한 한마디가 세월의 무상함을 대변한다.
1972년 즈음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육영수 영부인은 어시장이 서울역 뒤 시내 한복판에 있는 시장이 도시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이후 농산물 시장은 가락동으로, 수산물은 노량진으로 옮겨졌다. 지금 남은 중림 어시장은 그 때 이 곳을 떠나지 못한 상인들이 명맥을 잇고 있다. 어시장 규모는 계속 줄어들어 100미터도 채 시장거리가 남지 않았다.
얼 ?전엔 박원순 서울시장이 찾아와 “죽은 상권을 살리겠다”며 '재개발' 약속을 하며 돌아갔다. 주변 행인은 많은데 허름한 시장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옆집 동료가 한숨 섞인 말투로 내게 말했다. "으휴. 젊을 땐 젊어서 고생하고 늙으면 늙어서 고생하네."
맞다. 세월의 풍파 속 움푹 들어간 주름이 만져졌다. ‘인내’라는 기나긴 터널을 빠져 나왔지만 숨고르기만 할 뿐 내가 쉴 곳은 없어보였다.
"그냥 힘닿는 데까지 할 뿐이다. 배운 게 이것밖에 없으니. 나이 먹으면 편하게 살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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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칼바람 속에서 밥숫갈을 뜨며 모닥불처럼 묵묵히 살아갈 뿐.
"잠시만 화를 삭히자 칼바람아
조금만 힘내자 장작아
천천히 식자 국물아
팔려라 명태야
가만있자 자릿세야
찬데 앉아 밥 빨리 먹기는 경력 수십년차 달인이다
김치 쪼가리 하나 없는
국에 만 밥이 전부잖아
먼지 날리는 길가잖아
그러니 칼바람아
조금만 쉬었다 가라
조금 더 힘내라 장작아
5분만 아니 잠시만"
서울역 일대 종합발전계획에 따라 중림동 일대는 재개발을 앞두고 있습니다.
현재 중림시장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상인은 50 여 명 정도. 이들은 여기에서 평균 2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시 측 ?"정식 시장으로 인정받지 못한 중림동 수산시장은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100년 가까운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중림동 수산시장. 이젠 새벽녘에 타오르던 '모닥불' 모습을 다신 못 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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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 김민성 기자 연구 = 신세원 한경닷컴 기자 tpdnjs022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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