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개 질문 쏟아낸 재판관들
"직권상정은 의장 재량 아닌가"
"비정상 상황 타개 수단 아니냐"
새누리당 측 "국가적으로 중요한 정책결정 장기 지체"
국회의장 측은 원칙적 대응
[ 양병훈 기자 ] “국회선진화법은 법안심사권이 상임위원회의 전권에 속한 것인 양 만들었다. 본회의에서 의원이 심의 표결할 권리를 원천적으로 봉쇄해 위헌이다.”(손교명 법무법인 위너스 변호사)
“상정 요건을 가중다수결(5분의 3 이상)로 할 건지 일반다수결(2분의 1 이상)로 할 것인지는 입법자의 재량이다.”(조상미 정률 변호사)
쟁점법안 처리를 지연시켜 ‘식물 국회’ 논란을 빚고 있는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28일 서울 재동 대심판정에서 권한쟁의 심판 공개변론을 했다. 국회선진화법은 국회법 85조의2 1항으로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할 경우 해당 법안을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해 330일 내에 반드시 처리토록 하는 내용이다. 천재지변 등 국가 비상사태나 여야 합의가 있을 때만 국회의장이 법안을 직권상정토록 한 국회법 85조1항도 있다. 주호영 의원 등 새누리당 의원 18명은 최근 여야 간 의견 불일치로 쟁점법안 처리가 지연되자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쟁 」暄횬?직권상정하라”고 요구했고 정 의장이 국회선진화법을 이유로 거부하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이날 공개변론은 예상시간을 훌쩍 넘겨 4시간 넘게 진행됐다. 이 사건 주심인 김이수 헌법재판관은 “규정에 따르면 설령 상임위에서 법안을 통과시켜도 본회의 부의 여부는 국회의장이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청구인 측에 물었다. 청구인 측은 “제헌헌법 때부터 상임위에서 부결된 안건도 의원 30명이 요구하면 본회의에서 논의하게 돼 있었다”며 “본회의 부의 자체를 못하게 하는 건 잘못된 것”이라고 답했다. 김 재판관은 피청구인 측에 “(국회선진화법은) 대화와 타협을 강조할 뿐 타협이 안 되는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보느냐”고 질문했다. 피청구인 측은 “해당 법 조항에 여러가지 문제가 있을지라도 위헌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날 공개변론에는 청구 당사자인 주 의원과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이 대심판정에 직접 나와서 의견을 적극 밝혔다. 권 의원은 “상임위원회는 효율성과 전문성을 위해 하위법으로 규정한 것일 뿐 헌법에 상임위라는 말이 없다”며 “그런데 환경노동위원회에서 8명이 반대하면 나머지 292명이 찬성해도 본회의에 못 간다”고 지적했다. 주 의원은 “의원발의 법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지만 통과율은 낮아졌다”며 “야당이 요구하는 끼워넣기가 너무 많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정책결정이 장기 지체된다”고 토로했다. 반면 피청구인 측은 말을 극도로 아꼈다. 김근재 율촌 변호사는 “국회의장은 국회법 ?준수했고 법이 효력을 상실하지 않는 이상 불가피했다”며 “입법부 수장으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위헌 여부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박한철 헌재소장은 “입법부 다수를 구성하는 의원들이 입법권 침해를 주장하고 있다”며 “스스로 룰을 정해놓고 부정하는 결과가 되는데 자율적으로 해결해야지 권한쟁의 형태는 부적절해보인다”고 지적했다. 주 의원은 “당시 한나라당이 과반이 되기 어렵다고 봤는데 선거에서 이겨버렸다”며 “다수가 어떤 사정으로 권한을 침해당하면 오히려 권한쟁의로 구제받을 필요가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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