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상 첫 '마이너스 금리'] "슬금슬금 오르는 엔화 끌어내려라" 구로다의 강수

입력 2016-01-2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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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행의 극약처방…기준금리 연 -0.1%로

기업실적 악화·디플레 우려 '깜짝 카드'
유럽중앙은행 추가 돈풀기에 선제 대응



[ 도쿄=서정환 / 베이징=김동윤 기자 ]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 23일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일명 다보스포럼)에서 “물가 2%를 위해 필요하다면 주저 없이 금융정책을 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29일 일본은행은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금리 도입이라는 카드를 빼들었다.

일본 내 디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하락) 우려가 높아졌다는 것이 구로다 총재가 공식적으로 내세운 이유였다. 하지만 그보다는 ‘구로다 라인’으로 불리는 ‘1달러=115엔’ 이상으로 엔화가치가 오르는 것을 방조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시한 것이라는 게 외환시장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10년만기 국채금리 사상 최저

일본은행은 이날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지급준비금으로 예치하는 자금에 연 -0.1%의 금리를 적용하기로 했다. 은행의 기업 대출 증가와 시중 금리 하락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이날 10년만기 신규 발행 일본국채 금리는 읜?한때 연 0.090%까지 떨어지면서 사상 처음으로 0.1%가 깨졌다.

구로다 총재는 “국제 유가 하락과 중국 경제둔화로 세계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일본 경제 침체와 물가 하락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마이너스 금리의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일본은행은 물가 전망도 하향 조정했다. 2016회계연도(2016년 4월~2017년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1.4%에서 0.8%로 내렸다. ‘2% 물가상승률’ 목표 달성 시기도 종전 ‘2016회계연도 후반께’에서 ‘2017회계연도 전반께’로 늦췄다.

하지만 전격적인 마이너스 금리 도입은 최근의 엔화가치 상승과 증시 하락 때문이란 관측이 많다. 지난 16일 엔화가치가 장중 1년 만에 최고인 달러당 115엔대까지 오르면서 일본 기업 실적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기업들이 환율과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 증가로 임금 인상과 설비투자에 신중해질 경우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가 그리고 있는 ‘경제 선순환 구도’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

심리적 저항선 역할을 한 달러당 115엔 선이 무너지면 환율 흐름이 엔고(高)로 방향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국채 유동성을 감안할 때 연간 80조엔에 달하는 국채 매입 규모를 늘리기 부담스러운 점도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도입한 배경이라는 분석이다.

◆캐나다 등도 마이너스 금리 검토

이번 조치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은행의 극약처방”이라며 “주가 상승을 위한 위험한 도박이 될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금융 불안이 확산돼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강해지면 마이너스 금리 도입에도 불구하고 다시 엔화 강세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가 간 환율전쟁이 촉발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 21일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통화정책을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추가 양적 완화를 시사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그가 이르면 오는 3월 마이너스 예금 금리 폭을 확대하거나, 국채·지방채 매입 규모를 늘리는 식으로 부양책을 펼 것으로 보고 있다. 스티븐 폴로즈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도 지난달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도 최근엔 글로벌 자금의 대규모 유출을 차단하기 위해 위안화 가치의 급격한 하락을 막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수출 활성화를 위한 위안화 가치의 점진적인 하락 유도에 정책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중국 인민은행은 이를 위해 지난달 11일 위안화 가치를 미국 달러화가 아닌 13개 주요 교역대상국 통화로 구성된 통화바스켓을 기준으로 관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최근 1년간 중국 위안화는 미국 달러화와 연동돼 움직이면서 미 달러화가 아닌 다른 주요 통화에 대해서는 강세를 보였다.

■ 마이너스금리 정책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0% 이하로 떨어뜨리는 정책.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맡기는 예치금 금리를 마이너스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돈을 맡기면서 오히려 비용을 내야 하기 때문에 시중은행이 대출이나 유가증권 구입을 늘리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 중앙은행이 공급한 자금이 실물경제에서 더 잘 돌도록 하려는 취지다. 가계나 기업이 은행에 맡기는 예금 금리가 마이너스인 것은 아니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스위스, 덴마크 중앙은행 등이 시행 중이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 베이징=김동윤 특파원 ceo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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