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라면 담합'사건 승소 변호사의 반성문

입력 2016-02-02 18:25   수정 2016-02-04 14:15

판결문으로 보는 세상

법리에만 치중하다 원심 패소
사실관계 따져보니 담합 '무관'
"증거 디테일 챙겨야" 교훈 얻어



[ 김병일 기자 ] “변호사로서 많이 부족함을 느낀 계기가 됐습니다. 큰 공부가 됐어요.”

‘라면가격 담합 사건’에서 농심 측 혐의를 벗기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서혜숙 법무법인 케이씨엘 변호사의 고백이다. 서 변호사는 담합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08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농심을 대리해 원심에서는 패소했지만 작년 12월24일 대법원에서는 승소취지 파기환송을 받아냈다. 하지만 그는 원심인 고등법원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변론을 못한 것 같다”며 인터뷰 내내 아쉬움을 내비쳤다.

고등법원에서 패소한 케이씨엘과 김앤장은 대법원 단계에서는 전략을 변경했다. 각자 업무를 분담한 것이다. 담합의 이론적 부분은 김앤장이 맡되 케이씨엘은 공정위가 제출한 2000쪽에 달하는 증거서류 중 증거 상호 모순되는 내용을 밝히는 데 주력했다. 예컨대 공정위가 제출한 증거와 증언들을 보면 오뚜기가 가격 인상 내역을 전 거래처에 공지한 이후 열린 모임에서 삼양 임원이 “오뚜기는 언제 가격을 올리나요”라는 질문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라면회사 간 담합이 있었다면 상식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상황이다. 공정위 측에서 ‘정보교환’이라고 지목한 내용들도 “당신 회사 사장님 취임사 내용이 뭐냐” “지난달 매출실적은 어느 정도냐” 등 가격 인상 담합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서 변호사는 “원심 때는 법리에 치중했다”며 “고등법원에서 패소한 뒤 충격이 상당히 컸고 초심으로 돌아가 모든 증거와 사실관계를 일자별로 다시 꼼꼼히 따져보니 모순된 내용이 숱하게 발견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공정위가 제출한 증거의 디테일을 놓치고 경쟁법 이론만으로 승소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원심의 패인이었다는 점에서 많이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서 변호사는 이번 사건에서 “한수 배웠다”며 자세를 낮췄지만 공정거래와 관련, 굵직한 사건들을 해결한 베테랑이다. 대리점에 ‘물량 밀어내기’로 공정위로부터 124억여원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받은 남양유업을 대리해 지난해 2월 서울고등법원 행정2부(부장판사 이강원)로부터 “과징금 중 5억원을 초과하는 부분은 취소하라”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생명보험사들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변액보험 수수료 담합 과징금 취소 소송에서도 승소했다.

서 변호사는 사법연수원(28기)을 졸업한 뒤 곧장 케이씨엘에 들어가 공정거래 등 경쟁법 관련 업무 한우물만 팠다. 입사 직후 ‘상대(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나왔으니 경쟁법 분야에서 일해보라’는 선배의 권유를 따랐는데 평생의 전공분야가 됐다.

서 변호사는 불공정기업 제재방컥?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물량 밀어내기나 하도급 불법행위 등 피해 당사자가 명확하면 과징금을 매기기보다는 피해 회복을 우선시하자는 것이다. 그는 ‘동의의결’ 제도의 적극적 활용을 제안했다. 동의의결이란 공정위에 불공정 시장행위로 고발된 사업자가 원상회복 또는 피해구제 등 타당한 시정 방안을 제안하고, 공정위가 이해관계자 등의 의견을 수렴해 그 타당성을 인정하는 경우 위법 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를 말한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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