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밀입국

입력 2016-02-03 17:33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밤에 남편은 두만강을 탈없이 건넜을까. 저리 국경 강안을 경비하는 외투 쓴 검은 순사가 왔다 갔다 오르명 내리명 분주히 하는데 발각도 안 되고 무사히 건넜을까.”

김동환의 서사시 ‘국경의 밤’(1925년)의 첫 대목이다. 두만강 유역 국경 지대에서 소금을 밀수하러 나간 남편을 걱정하며 초조하게 기다리는 아내의 심정을 묘사한 부분이다. 혹시라도 순사에게 들킬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이 사실감 있게 표현돼 있다.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루트를 통하지 않고 국경을 넘나드는 일은 인류사에 국경이라는 장벽이 생기면서 동시에 시작됐을 게 분명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밀입국 혹은 밀수는 모든 나라에서 불법이며 적발되면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때로는 목숨도 걸어야 한다. 반면 성공하면 팔자를 고칠 수도, 큰 돈을 벌 수도 있다. 물론 시리아 난민처럼 내전과 기아 등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최후의 수단인 경우도 많다.

몰래 국경을 넘는 일은 그래서 ‘밑바닥 인생’들의 최후의 비상구 역할을 하지만 육체적, 정신적으로 인간을 극한 상황까지 몰아간다. 각종 영화나 문학작품의 단골 소재가 되는 것도 瀏【?? 연극과 영화로 만들어진 ‘해무’라는 작품은 제7태창호 사건이라는 실화를 토대로 했다. 2001년 10월 중국인 49명, 조선족 11명이 태창호라는 배에 숨어 여수로 밀입국을 시도하다 25명이 질식사하고 남은 35명도 모두 붙잡힌 사건이었다.

적발된 밀입국 사례를 보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것도 많다. 2013년엔 중국 여성 3명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아시아나 항공기를 탄 뒤, 승무원 휴게실 천장 속에 숨어 홍콩, 일본, 인천을 경유해 미국까지 갔다가 LA 공항에서 붙잡힌 일도 있었다. 멕시코와 미국 국경에서는 자동차 센터페시아나 시트 속, 심지어 엔진룸에 숨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인천공항 김해공항 등 한국의 관문 역할을 하는 대표 공항에서 잇따라 밀입국 사건이 발생하면서 출입국 관리에 구멍이 뚫렸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제주도를 통한 밀입국 역시 전문 브로커까지 개입해 조직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니 사태가 심각한 것은 분명하다. 가뜩이나 IS 같은 국제테러 조직이 창궐하는 마당이니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밀입국 시도가 늘고 있다는 것은 한편으론 그만큼 한국이 동경의 대상이며 희망의 땅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한쪽에서는 ‘헬조선’ 운운하는데 또 다른 이들은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들어오려고 하니, 참 아이러니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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