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스 포함 글로벌 헤지펀드 큰손들 위안화 하락 베팅
위안화 급락→외채 상환부담에 기업부도 속출 우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헤지펀드계의 전설’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가 지난달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에서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아시아통화 절하에 베팅했다”고 밝힌 뒤 중국 인민일보와 신화통신이 소로스를 최근 급락하고 있는 위안화의 환(換)투기 배후세력으로 지목하고 나섰다. 소로스 외에도 글로벌 헤지펀드 큰손들이 일제히 위안화 하락에 베팅하는 등 헤지펀드와 중국 정부의 통화전쟁이 가열될 조짐이다.
중국 정부와 글로벌 헤지펀드 간의 전면전은 그렇지 않아도 경착륙 가능성이 우려되는 중국 경제의 문제점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그에 따른 중국에서의 자금 유출이 미국 중심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응한 중국의 역내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대응한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세계은행에 대응한 신개발은행(NDB), 국제통화기금(IMF)에 대응한 긴급외환보유기금(CRA) 구상, 위안화의 아시아 지역 통화화 추진 등 전후 미국 중심의 국제 통상·통화질서에 맞서려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대응전략이란 분석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1980년대 일본이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외환보유액을 축적하고 미국 자산을 매입하면서 ‘언제 미국을 능가할 것인가’가 국제 경제계의 화두가 됐을 때 ‘플라자협정’(1985년)이란 이름의 주요 5개국(G5) 외환시장 협조 개입으로 한 번에 일본을 ‘잃어버린 20년’으로 추락시킨 미국의 전략을 상기시킨다.
핵심은 환율이다. 중국은 1994년 1월 위안화 환율을 달러당 5.8210위안에서 8.7219위안으로 대폭 평가절하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에도 불구하고 지지부진하던 성장률은 그 뒤 수출이 호조를 보이면서 매년 10% 정도의 고성장을 지속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이에 대응해 1995년부터 엔화 절하를 시작했고,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 제품과 경합관계에 있던 동아시아 국가들의 수출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려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로 연결됐다.
94년 평가절하, 중국 경제 고속성장
고(高)투자·고수출·고성장 지속으로 4조달러에 육박하는 외환보유액을 쌓으며 G2로 등극하는 등 자신감이 붙은 중국은 2005년부터 고정환율제도를 다소 유연한 관리변동환율제도로 바꿨다. 위안화 가치는 그 뒤 지속적으로 올랐다. 이는 계속된 자본 유입이 주요 원인이지만, 무엇보다도 위안화를 국제화시켜 아시아 지역 통화로 육성하고자 하는 중국의 전략에 의한 것이었다. 인접국과 위안화 통화스와프 확대, 역외 위안화 허브 육성 등 다양한 위안화 국제화정책도 추진됐다.
그러나 위안화 절상은 중국의 수출 둔화를 초래했다. 일본은 2012년 말 엔화 절하를 통해 장기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아베노믹스’를 시작했다. 이로 인해 위안화는 2012년 7월 이후 엔화에 대해 45%가량 절상되면서 수출에 직격탄을 맞았다. 2015년 글로벌 침체로 대부분의 국가들이 수출 감소를 겪은 가운데서도 일본은 수출이 달러 기준 1.3%, 엔화 기준 4.8% 증가한 데 비해 중국은 2.8% 감소했다. 그 결과 중국은 성장률 7% 방어선마저 무너지고 고수출 고성장을 예상하고 투자해 온 제조업은 가동률이 60%까지 하락했다. 주택도 초과 공급이 누적되는 등 건설 부문마저 몸살을 앓게 됐다. 이런 과잉 투자는 기업 부실을 심화시키고 다시 금융 부실로 비화돼 부실여신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오랜 고성장으로 임금도 급상승해 수출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급기야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위안화 국제화는 잠시 뒤로 미루고 지난해 8월 위안화 4.6% 평가절하를 전격 단행했다. 지난해 말에는 강세를 보이던 달러에 페그(고정)돼 있던 환율제도도 바스켓환율제도로 바꿔 위안화 절하를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중국의 정책은 미국 금리 인상으로 약세가 예상되던 위안화 절하에 불을 댕기는 역할을 했다.
경착륙 우려에 자본유출 가속
그러면서 마침내 중국에서 자본이 유출되기 시작했다. 수출 감소, 가동률 하락, 기업 수익 악화로 주가가 급락하는 가운데 위안화 가치도 떨어져 환차손마저 우려되니 자본 유출은 더 가속화됐다. 기업 부실 증가로 외국 금융회사들의 대출 회수는 2014년 중반부터 시작해 작년 중반부터 가속화되는 추세다. 작년 중반부터는 포트폴리오 투자와 직접 투자도 감소세로 돌아섰다. 그 결과 2014년 6월 3조9932억달러에 달했던 외환보유액도 줄기 시작해 최근엔 월 1000억~1100억달러 이상 급감하고 있다. 작년 말에는 3조3304억달러까지 줄었다.
이렇게 되면 누가 봐도 위안화 약세는 명약관화한 것이다. 수출만 증가할 정도로 통화 가치가 적절히 절하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헤지펀드 등 투기세력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 헤지펀드뿐만 아니다. 일반 투자자들 역시 주가가 하락하고 환차손도 우려되는 국가의 시장에서 돈을 빼서 환차익이 예상되는 국가에 투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다만 헤지펀드는 가치 하락이 예상되는 통화를 빌려서 나중에 더 하락하면 갚고 빠지는 공(空)매도를 통해 더 큰 이익을 취하려고 보다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점이 다르다.
예를 들어 달러당 6.6위안인 위안화를 100달러에 상당하는 660위안어치를 빌려서 위안화를 공격적으로 매도해 위안화 환율이 8.0위안으로 올랐다(가치 하락)고 하자. 이제는 같은 100달러면 800위안을 살 수 있다. 660위안을 갚고도 140위안이 남는 것이다. 중국은 외환거래를 통제하고 있지만 그동안 역외 위안화 허브 등 공매도 여건이 상당히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통화 국제화와 경제 안정의 동시 달성이 얼마나 힘든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헤지펀드가 가세하면 통화 가치 하락이 계획했던 것보다 더 크고 빨라져 외채를 빌린 기업의 원리금 상환부담이 가중돼 기업 부도가 속출하고 물가도 급증하는 등 상황이 악화된다. 중앙은행은 이를 막기 위해 보유 달러를 풀어 자국 통화 가치의 급락을 막고자 중앙은행과 헤지펀드 간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1992년 영국 스웨덴 이탈리아, 1997년 태국처럼 중앙은행이 이기는 경우는 드물다. 전 세계적으로 헤지펀드 규모가 약 2조달러 규모로 막대하고, 일단 헤지펀드가 움직이면 하루에만 거래액이 약 5조~6조달러에 달하는 외환시장의 투자자들도 상당수가 동조하기 때문이다.
절하여건 파고드는 헤지펀드
헤지펀드는 그냥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경제 상황이 수출을 늘리기 위해 통화 가치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는 여건인데도 불구하고 경직적인 환율 제도나 불투명한 환율 운용 등으로 통화 가치가 고평가된 국가의 통화 가치 하락에 베팅하는 것이다.
따라서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거시경제를 튼튼하게 운용해 통화 가치가 절하되지 않으면 안 되는 여건을 조성하지 않아야 하고, 환율은 가능한 한 시장 상황이 반영되도록 신축적으로 운용해 통화 가치가 고평가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중국은 이런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엄청난 시험대에 들어섰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한경닷컴 바로가기] [스내커] [한경+ 구독신청]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