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아이] 돌아온 고대 앞 명물 '영철버거'

입력 2016-02-04 11:11   수정 2017-07-01 10:59

문닫은 가게 되살린 고대생들
추억의 힘, 클라우드펀딩으로



양쪽 색깔이 다른 눈동자란 뜻의 ‘오드 아이(odd-eye)’는 한경닷컴 기자들이 새롭게 선보이는 코너입니다. 각을 세워 쓰는 출입처 기사 대신 어깨에 힘을 빼고 이런저런 신변잡기를 풀어냈습니다. 평소와 조금 다른 시선으로 독자들과 소소한 얘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 김봉구 기자 ] “고대는 영철버거지~” “영철버거는 사랑입니다” “고대의 명물로 끝까지 남아주세요” “부활의 영철 영원하라~”

따스한 온정이 가게를 감싸 안았다. 서울 안암동 고려대 앞 명물 ‘영철버거’ 얘기다. 33㎡(10평) 매장 한쪽에 마련된 게시판엔 색색의 메모지에 써내려간 응원메시지가 빼곡했다.

특별한 사연이 있다. 영철버거는 태생이 ‘스트리트버거’였다. 2000년 고대 정경대 후문 앞 노점으로 출발했다. 다진 돼지고기와 채소를 철판에 볶아 듬뿍 담아냈다. 가격은 단돈 1000원. 주머니 가벼운 대학생들이 부담 없이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소울푸드(영혼을 위로하는 음식)였던 셈이다.

호응에 힘입어 이영철 대표는 영철버거를 가맹점 80여개(2007년 기준)의 프랜차이즈로 키워냈다. 하지만 이후 6000~7000원대의 고급 수제버거 전략을 택한 게 독이 됐다. 학생들의 발길이 뜸해졌고 지난해 7월 경영난으로 문을 닫아야 했다.

그러자 고대생들이 영철버거 살리기에 나섰다. 크라우드펀딩 포털 와디즈를 통해 ‘비긴어게인 영철버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작년 9월 고려대 정경대 학생회가 주도한 이 클라우드펀딩(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모금)에는 모두 1870여명이 참여해 약 6800만원을 모았다. 이영철 대표에게 전달된 돈은 가게 보증금 등 영철버거 부활의 종잣돈으로 쓰였다.

올해 들어 매장을 다시 열었다는 소식에 지난 2일 가게를 찾았다. 12~13년 전 고대에 놀러갈 때면 노점에서 영철버거를 사먹곤 했다. 고대생 친구는 학교 명물로 주저 없이 영철버거를 소개했었다. 세월이 흘렀어도 단품 2500원짜리 스트리트버거, 청양고추를 섞어 느끼하지 않고 맵싸한 특유의 뒷맛은 그 시절 그대로였다.

비슷한 기억이 많은 모양이었다. 01학번 졸업생은 “대학생활을 함께 했던 영철버거… 후배들이 잘 지켜주길 바랍니다”라고 당부했다. “2003년 입학 때부터 자주 먹었던 스트리트버거 다시 먹을 수 있어서 좋네요” “주말을 맞아 가족과 함께 먹고 가네요! 예전 그 맛 그대로입니다” 등 졸업생들의 회상이 이어졌다. 추억은 힘이 세다.

영철버거엔 스토리(이야기)도 있다. 이영철 대표는 그동안 형편이 어려운 고대생들에게 써달라며 매년 2000만원씩의 ‘영철 장학금’을 내놨다. 그러면서 단순한 가게가 아닌 ‘고대생들의 가족’으로 각인됐다. 학생들뿐 아니라 교수들까지 영철버거 살리기에 팔을 걷은 이유다. 가게를 찾은 날에도 고대 교수와 대학원생 일행이 눈에 띄었다.

스토리가 히스토리(역사)로 진화하면서 쌓인 추억의 힘은 클라우드펀딩 동참을 이끌었다. 고대 졸업생들의 응원도 컸다는 후문이다.

최근 매장을 찾은 한 졸업생은 이렇게 적었다. “나 역시 소액이지만 기부했다. 내 젊은 날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영철버거를 후배들도 먹어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리고 고대생들을 아껴주신 사장님에 대한 도리로서, 고대의 명물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자영업이 힘들다고 한다. 창업 5년 후 생존율이 30%에 불과하다는 통계치도 나와 있다. 품질과 경쟁력이 생존의 기본이다. 다만 그것만으로 영철버거가 되살아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최근의 ‘응답하라 1988’ 열풍에서 보듯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사람들은 따뜻한 추억과 스토리에 목말라 한다. 고대 앞 명물로 영철버거가 돌아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다. “영철버거가 다시 오픈한 것은 학생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그들이 돕기로 결정한 것은 사장님이 계셨기 때문”이라는 어떤 고대생의 진심이, 잔잔하지만 긴 여운을 남겼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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