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디스플레이 '다품종 소량생산' 확산

입력 2016-02-09 19:16  

차량용 메모리, 휘어진 OLED 패널…거래처 요구따라 '주문제작'
IoT·자동차·스마트워치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사용 늘어

대량생산보다 이익률 높아 수탁생산방식 채택 기업 급증
'창의적' 조직 변신 서둘러야



[ 남윤선 기자 ]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주요 전자부품산업의 트렌드가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급격히 바뀌고 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사용처가 과거엔 PC나 스마트폰 정도였지만 점점 자동차, 웨어러블(착용형) 기기 등 다양한 제품에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산업 트렌드의 변화가 대량생산에 익숙한 한국 업체들에는 위기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거래처의 필요를 정확히 파악하고 창의적으로 제품을 제작하는 ‘커스터마이제이션(주문 제작)’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주문이다.


◆‘다품종 소량생산’ 확산

전자부품업계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이 확산되는 건 과거보다 많은 제품에 반도체나 디스플레이가 채용되고 있어서다. 디스플레이는 과거엔 TV, PC, 스마트폰에 대부분이 쓰였다. 모양도 모두 사각형이었다. 하지만 지금?자동차, 시계, 드론 등으로 사용처가 늘어났다. 모양을 원형으로 하거나 휘고 구부리기도 한다. 메모리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과거 삼성전자와 애플이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하고 있을 때는 두 거래처에만 역량을 집중하면 됐다. 하지만 수많은 스마트폰업체가 생기고, 요구하는 사양도 달라지면서 과거보다 다양한 종류의 메모리 반도체를 내놓아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사용처도 디스플레이와 마찬가지로 각종 사물인터넷(IoT) 기기와 데이터 저장용 서버 등으로 넓어졌다.

제조업체의 필요에 따라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변신하는 사례도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소규모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사업을 키우고 있다. 지금은 애플, 퀄컴 등 소수의 거래처에만 의존하고 있다. 이 경우 만일 애플이 주문을 끊으면 삼성은 큰 타격을 보게 된다. 작은 물량을 주문하는 거래처라도 많이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제품을 다양화해야 한다.

◆소비자 맞춤형 제품으로 승부해야

일반적으로 다품종 소량생산은 소품종 대량생산보다 이익률이 높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경쟁 업체인 TSMC가 30%가 넘는 영업이익률을 올리는 이유다. TSMC는 삼성과 달리 수많은 거래처를 위해 다양한 종류의 시스템반도체를 만들고 있다.

다품종 소량생산을 잘하기 위해서는 거래처와 소통이 원활해야 하고, 창의성도 뛰어나야 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한 자동차업체가 기계식 제어판을 없애고 싶어한다면, 제어판이 있는 부분 모두를 디스플레이로 대체하는 아이디어를 부품업체가 먼저 제시하는 식이다.

그러나 경쟁 업체보다 싸게 대량으로 생산하는 데 익숙해진 한국 부품업체들은 다품종 念?暈?시대에 제대로 적응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 전자업계 최고경영자(CEO)는 “다품종 소량생산을 잘하려면 회사의 전반적인 생각하는 방법이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며 “하지만 우리 부품업계에서는 여전히 대량생산에 익숙한 사람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어 변화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오히려 중국 업체들이 한국보다 먼저 움직이고 있다. 중국 1위이자 세계 5위 액정표시장치(LCD)업체인 BOE는 전체 조직의 절반 정도가 다품종 소량생산 사업을 하고 있다. 위엔펑 BOE 최고마케팅책임자(CSMO)는 “LCD는 더 이상 첨단제품이 아닌 범용품”이라며 “대량생산으로 가격을 낮추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소비자 맞춤형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전자업계 고위관계자는 “부품 기업이라고 무조건 공대 출신만 뽑아서는 안 된다”며 “제품을 미래에는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상상할 수 있는 인문학도를 채용하는 등 과감한 도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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