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지현 기자 ] 지난달 27일 중동 지역을 다녀온 뒤 발열, 기침 등의 증상을 보인 27세 여성이 서울의 한 동네의원을 찾았다. 의사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의심되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메르스 의심환자가 생기면 보건당국에 신고해야 하지만 하지 않았다.
이 환자가 두 번째 찾아간 대학병원도 마찬가지였다. 메르스 가능성이 있으니 다른 대학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신고는 안 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 응급실로 갈 수밖에 없었다. 이 병원은 메르스 의심환자가 발생했다고 보건당국에 신고했다. 환자는 국가지정 격리병상으로 옮겨졌다. 함께 있던 보호자, 구급차 운전기사 등은 즉시 격리됐다.
검사 결과 다행히 메르스 바이러스는 나오지 않았다. 병원 환자 보건당국 모두 안도했다. 하지만 메르스 악몽이 재현될 뻔한 소동이었다. 이 상황을 파악한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1일 전국 의료기관에 공문을 보냈다. “메르스 의심환자가 오면 신고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동네병원과 첫 번째 간 대학병원이 신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바이러스 등 감염원은 병원에서 번진다. 병원에서 감염병에 걸리는 환자는 전체 감염 환자의 5~10% 정도다. 한 병원 감염 전문가는 “병원이 질병을 키우고 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면역력이 떨어진 수많은 환자가 모이는 곳이 병원이다. 감염병 환자도 마찬가지다. 진료 후 이들은 각자 집으로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병원 감염은 지역사회 감염으로 번진다.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는 중국 홍콩 싱가포르 등의 병원을 통해 급속히 퍼졌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 때도 그랬다. 환자는 이 병원 저 병원을 쇼핑하듯 다녔다. 일부 병원은 환자가 줄까봐 의심환자가 왔다는 사실을 숨겼다. 보건당국의 서투른 대응은 사태를 키웠다. 국내에서만 186명이 감염돼 38명이 사망했다.
남미에서 유행하는 지카 바이러스 때문에 세계 방역망에 비상이 걸렸다. 이런 때 메르스 의심환자가 찾은 두 병원은 무책임하게 다른 병원으로 안내만 했다. 메르스 바이러스가 활개를 쳤던 한국의 의료 환경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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