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상 재해 범위 넓어질 듯
[ 양병훈 기자 ] 일터에서 수치심과 모욕감, 자괴감 등을 심하게 느껴 자살한 때도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잇따라 나왔다. 법원이 판단하는 산업재해 자살의 범위가 종전보다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남편 현모씨의 자살을 산재로 인정해달라”며 부인이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고 14일 발표했다. 중학교 교사였던 현씨는 2012년 초부터 학교폭력 관련 업무를 맡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특히 2학년 학생 12명이 1학년 학생 13명을 상습 폭행하고 돈을 빼앗은 사건을 처리하며 업무 부담이 컸다.
현씨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너무 조직적 폭력사건으로 몰아갔다”며 스트레스를 호소했고 수일 후 학교 화장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 원심은 현씨가 감수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은 건 아니라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 재판부는 “자살 직전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와 정신적 고통으로 급격히 우울증세가 유발됐다.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해 자살한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며 이를 파기 ?徘杉?
사내 갈등과 업무 중 받은 모욕감으로 자살한 콘도업체 직원 이모씨도 대법원에서 산재를 인정받았다. 이씨는 회사 총무팀장으로 일하다가 2009년 5월 객실부 팀원으로 발령났다.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팀장 밑에서 시설물 점검 등을 했으며 자기 사무실이나 책상도 없었다. 직속상사는 “너는 어떻게 과장을 달았느냐”는 등의 말을 했다. 2010년 8월 방 배정에 불만을 품은 투숙객에게 심한 질책을 들은 직후 자신이 관리하던 객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부인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인정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하자 소송을 냈다. 이 사건 원심 재판부는 이씨의 자살이 꼼꼼하고 예민한 성격 등 개인적 특성에서 비롯된 면이 크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산재를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고법으로 돌려보냈다. 3심 재판부는 “중압감 내지 불안감의 정도와 지속시간 등을 참작하면 업무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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