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쪽 색깔이 다른 눈동자란 뜻의 ‘오드 아이(odd-eye)’는 한경닷컴 기자들이 새롭게 선보이는 코너입니다. 각을 세워 쓰는 출입처 기사 대신 어깨에 힘을 빼고 이런저런 신변잡기를 풀어냈습니다. 평소와 조금 다른 시선으로 독자들과 소소한 얘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 김봉구 기자 ] 어제가 밸런타인데이였죠. 호감 있는 남자에게 초콜릿을 건네며 마음을 표시하는 날입니다. 상술이란 얘기도 있지만, 2월14일은 우리에게 이런 ‘달달한 날’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아시나요? 이날은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1910년)이기도 합니다. 아, 모른다고 해서 나무라는 건 아닙니다. 사실 저도 몰랐으니까요. 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보내온 자료를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서 교수는 당부했습니다. “2월14일이 어떤 날인지를 두고 갑론을박할 게 아니라 그 역사적 의미와, 사형 선고에도 자식의 죽음보다 조국과 민족을 먼저 생각했던 안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다시금 기릴 수 있는 날이 되길 바란다”고요.
저는 안중근 의사가 사형 선고를 받은 날짜는 몰랐지만,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 내용은 알고 있었습니다. 아들에게 보낸 ‘생의 마지막 편지’였죠.
죽음을 앞둔 젊은 아들에게 수의를 지어 보내는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럼에도 이렇게 썼답니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마음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刑)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처음 이 편지를 읽었을 때 머리카락이 쭈뼛 섰던 느낌을 잊을 수 없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잖아요. 그리고 역사는 통시성(通時性)과 공시성(共時性)의 요소를 함께 갖고 있죠. 시간의 흐름만 역사가 아닙니다. 바로 ‘지금, 여기’ 우리의 인식이 겹겹이 쌓여서 역사가 되는 것이겠지요.
2월14일을 밸런타인데이 대신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로 기억하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이날이 달달하기만 한 날은 아니란 것을, 역사적 사건 뒤편에 이처럼 결기 어리고 가슴 저릿한 어머니와 아들의 이야기가 있는 날이란 사실을, 한 번쯤 새겨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서 교수팀이 카드뉴스 형태로 제작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공개한 한국사 지식캠페인 ‘안중근 의사와 조마리아 여사 편’을 함께 올립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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