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실적쌓기용 쏟아내
본회의 통과는 뒷전
자신이 발의한 법안 표결에 반대표 던지거나 기권도
[ 이정호 기자 ] 오는 5월 회기가 종료되는 19대 국회는 입법 효율성 측면에서도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주요 이슈가 터질 때마다 졸속·날림 법안을 생산해내며 무더기로 의원입법안을 쏟아냈지만 정작 처리(본회의 통과)는 뒷전으로 미뤘다는 지적이다. 의원들의 실적 쌓기용 법안이 국회에 적체되면서 각 법안 심사에 소요되는 유·무형의 비용 낭비도 문제점으로 제기된다.
◆의원입법 건수 사상 최대치
19대 국회 발의법안 중 87.1%인 1만5394건은 정부가 아닌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다. 이 같은 의원입법 건수는 기존 사상 최대치였던 18대 국회 때(1만1191건)보다 4203건 늘어난 것이다. 의원입법안 중 원안 가결 또는 수정 가결돼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6.9%(1066건)에 불과하다. 가결률은 18대 국회(5.7%) 때보다 다소 높아졌지만 17대 국회(12.2%)에 비해선 5.3%포인트 하락했다. 나머지 법안은 국회 해당 상임위원회에 계류(9977건)돼 있거나 대안반영 등을 이유로 폐기(3892건) 또는 철회(172건)됐다.
의원입법안 가결률이 이처럼 저조한 것은 시류에 편승한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법안이 많은 데다 입안 단계부터 준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등 굵직한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여야 의원은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경쟁적으로 발의했다. 입법 건수를 자신의 의정실적으로 활용하려는 의원들이 기존 법안의 내용만 살짝 바꾼 재탕·삼탕 법안을 내놓기도 했다.
◆대안반영 폐기 폭증
의원들의 이 같은 구태는 역대 국회마다 급증세를 보이는 ‘대안반영 폐기’ 법안 건수를 들여다보면 명확해진다. 대안반영 폐기는 법안의 취지는 같지만 내용이 다를 때 별도의 대안 하나를 마련해 각각의 내용을 반영한 뒤 나머지 법안을 폐기하는 것이다. 19대 국회에서 대안반영 폐기 건수는 3892건으로 18대 국회 때보다 665건 늘어났다.
홍금애 법률소비자연맹 정책실장은 “다른 법안에 반영돼 폐기된 법안이 많다는 건 내용이 비슷하거나 기존 법안의 내용을 살짝 바꾸기만 한 법안이 많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신이 발의한 법안에 반대도
내용이 비슷한 법안들이 대안반영 폐기 등의 과정을 거쳐 하나의 대안 법안으로 뭉뚱그려지는 과정에서 의원들이 자신이 발의했던 법안 표결에 반대표를 던지거나 기권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법률소비자연맹 자료에 따르면 19대 국회에서 의원 자신이 대표발의 또는 공동발의한 법안에 반대표를 던진 사례는 총 165건, 기권은 432건에 달했다. 홍 실장은 “자신이 발의한 법안에 반대하거나 기권한 의원은 대부분 상임위 법안 심사 과정에서 대안반영 폐기되거나 수정되면서 본래 법안 발의 취지와 다르게 변질된 것을 문제삼는다”며 “법안 심사 과정에서 국회 입법권이 많이 훼손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원입법 법안이 폭증하면서 공동발의에 참여한 의원이 늘어난 것도 19대 국회의 특징이다. 법률소비자연맹에 따르면 200건이 넘는 법안에 공동발의 사인을 한 의원은 118명에 달했다. 국회 관계자는 “법안 발의에 필요한 최소 동의 의원(10명)을 채우기 위해 법안 내용을 모르는 의원에게 사인을 부탁하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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