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베이징에서 현지 금융업계에 종사하는 중국인 친구들과 북한 핵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들의 고(高)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에 대한 인식이 한국인들과는 너무 격차가 컸다. 한 친구는 “한국 내 미국의 사드 배치는 1962년 옛 소련이 쿠바에 워싱턴을 겨냥한 미사일 배치를 시도했던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친구는 “중국의 대(對)한국 무역수지 적자 규모가 약 800억달러나 되는데 사드 배치를 검토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 장관은 최근 “전문가 설명이 없더라도 사드는 중국을 겨냥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중국은 국가안보이익 등 합법적인 권익에 대한 침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한반도 문제의 핵심은 북한과 미국의 관계”라고 전했다.
이런 발언은 미국과 동맹 관계에 있는 한국에 위협적인 경고 메시지로 들렸다. 한반도 문제를 북·미 협상으로 풀어야 한다는 주장은 북한의 일관된 입장이다. 중국이 이를 지지하겠다는 건 한국과의 관계 악화를 불사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무엇보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느낀 점은 중국이 사드 배치를 저지하기 위해 한국에 경제적 보복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에 줄타기 외교는 숙명이다. 미국에 안보를, 중국에 경제를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선 불가피하다.
우리 역사 가운데 조선시대 강홍립 장군의 처세를 참고해 보면 어떨까. 1618년 4월 명나라는 요동반도를 침범한 후금에 맞서기 위해 조선에 원병을 요청했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때 큰 도움을 준 명나라 요청이기에 어쩔 수 없이 강홍립 장군을 출병시켰다. 그러나 광해군은 “힘써 싸우지 말고 기회를 엿보아 후금에 싸울 뜻이 없음을 전하라”고 비밀리에 명령했다. 강홍립은 광해군의 당부대로 후금과의 교전 때 병사들로 하여금 화살촉을 뺀 화살을 쏘도록 해 명나라를 도울 수밖에 없는 조선의 처지를 간접적으로 알렸다. 이를 통해 조선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 후금의 누르하치는 광해군 재위 기간 동안엔 조선을 침략하지 않았다.
우리는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하면서도 중국과의 우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어느 한쪽에 치우친 결정으론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
이규엽 < 제주대 한중금융연구센터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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