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F·코오롱 '패션 빅3', 중국 진출 10~20년 성과 미미
조직 관료화돼 역동성 떨어져
진출업체 작년 200곳 넘지만 성공은 베이직하우스 등 극소수
"화장품은 최고 엘리트 파견…패션사에 중국은 순환보직처"
[ 임현우 기자 ] 중견 유아복업체 A사는 중국 매장을 지난해 초 400여개까지 늘렸다가 불과 1년 새 절반인 200여개로 줄였다. ‘1가구 1자녀’ 정책 폐지의 수혜를 기대하고 공격적으로 매장을 늘렸지만 기대만큼 실적이 나오지 않아서다. 이 회사는 ‘한국산 유아복’이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정작 상품의 절반가량은 국내에서 팔던 재고였고, 가격은 한국보다 두 배가량 높게 매겼다. 중국인들은 “몇 번 사보니 품질에 비해 비싸다”며 발길을 돌렸다. 백화점에 약속한 최소 수수료는 매달 나가는 탓에 손실만 쌓여갔다.
A사의 사례처럼 내수시장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야심차게 중국에 진출했다가 ‘쓴맛’만 릿?패션업체들이 적지 않다. 한국패션협회에 따르면 중국에 진출한 국내 브랜드는 2003년 52개에서 지난해 200여개로 늘었다. 하지만 현지화를 통해 중국 매출이 한국을 추월한 이랜드, 더베이직하우스 등 극소수를 제외하면 성공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중국 전략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국내 패션업계 ‘빅3’로 꼽히는 삼성물산, LF, 코오롱인더스트리 등도 중국에선 힘을 못쓰고 있다. 삼성물산은 1997년 ‘라피도’에 이어 ‘빈폴’ ‘엠비오’ 등을 진출시켰지만 중국 매출은 연 1000억원대에 그치고 있다. LF와 코오롱도 2000년대 아웃도어 브랜드 ‘라푸마’와 ‘코오롱스포츠’를 내보냈지만 해외매출 비중은 1~4% 수준이다. 중견업체인 세정그룹은 2004년 ‘인디안’, 패션그룹형지는 2006년 ‘크로커다일레이디’로 중국에 나갔다가 철수한 경험이 있다.
전문가들은 대형 패션업체들이 ‘대기업 마인드‘에 젖어 해외 시장 공략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지적한다. 신희진 한국패션협회 팀장은 “2000년대 중후반까지 많은 업체가 중국이 우리보다 패션이 낙후됐다고 생각해 ‘재고를 소진하는 시장’으로 여겼다”며 “현지업체를 끼지 않고 직진출 형태로 나가 모든 것을 스스로 다 하려 했던 것도 실수였다”고 말했다.
대기업 계열 의류회사에서는 다른 업종에서 부임한 경영진이 패션사업의 감성적인 특징을 제대로 좇아가지 못하는 일도 심심찮다. 업계 관계자는 “패션 계열사를 처음 맡은 사장이 ‘디자인’ 등 패션업의 본질을 무시하고 제조업 마인드로 공급망관리(SCM) 등을 무리하게 접목하다 고전한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한국 스타일이면 잘 팔리겠지” 오판
여성복업체 B사는 여성들의 팔, 다리, 허리가 길고 체격이 큰 중국 북방에서 한국 여성 체형에 맞춘 정장을 그대로 내놨다가 2년이 채 안돼 사업을 접었다. 패션컨설팅업체 MPI의 최현호 대표는 “옷은 색상의 채도, 옷단의 길이, 핏(fit) 등이 조금만 달라져도 소비자의 호불호가 확 갈린다”며 “중국인이 선호하는 색상과 핏이 한국인과 분명히 다르고, 그 취향도 30여개 성마다 제각각”이라고 말했다.
중국에서 한류 열풍이 불면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패션업체는 한국 패션기업이 아닌 중국의 한두이서(韓都衣舍)다. 동대문 옷을 떼어다 파는 온라인 쇼핑몰로 시작한 한두이서는 연 매출이 2500억원으로 커졌다. 사업 초기부터 ‘한국 스타일을 살 수 있는 집’이라는 문구를 내걸고 동대문에서 가져온 샘플 중 반응이 좋은 것을 골라 현지 공장에서 빠르게 생산해 팔았다.
화장품회사들은 중국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홍콩,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중화권 전역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하지만 해외 사업의 ‘첫 관문’인 중국에서부터 고전하는 패션업체들에 이런 확장 전략은 먼 얘기다. 한 패션업체 임원은 “한국의 인구 규모에선 연매출 1000억원을 넘어가면 추가 성장은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며 “인접국에서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데 현실은 만만치 않다”고 털어놨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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